" 좋은 점수 받는데만 신경 삶의 제한 많아 안타까워 겉모습의 행위 결과보다 사랑의 마음상태가 중요 "

몇 해 전 터키 이스탄불대학에서 한 대학원생이 한 달간 자료 조사를 하고 싶다며 한남대에 온 적이 있었다. 그는 회교 신자지만 한국 기독교의 부흥 원인과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에 관해 논문을 쓰려고 왔다. 그와 몇 번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식당에 갈 때마다 메뉴를 정할 때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 돼지고기는 물론 먹지 않고, 소고기도 회교의 법대로 도살한 것만 먹는다고 했다. 채식을 좋아한다고 하기에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더니 소고기를 같이 넣어서 먹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생선구이 집이나 채식 뷔페만 겨우 갈 수가 있었다. 회교 율법에 따라 곧이곧대로 행동하려고 하는 모습에 감탄도 했지만, 살아가는 데 너무 많은 제한을 받는 것 같아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다.

몇 해 전 동료 교수들과 중국 곡부 근처에 있는 태산에 여행을 같이 간 적이 있었다. 높이는 그리 높지 않은 1524m였지만 중국의 5대 명산에 들어간다고 한다. 구름이 산허리를 감아 도는 신비감이 있는 산을 케이블카를 타고 중턱까지 올라간 후에 계단을 걸어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면 한 도교 사원이 나온다. 그동안 필자가 생각했던 도교는 무위자연을 말하면서 신선처럼 행동하는 그런 이미지였는데, 동행한 사학과 교수로부터 중국의 도교는 생활화되어 중국 인민들의 삶 가운데 미신처럼 뿌리내리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도교가 어떤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는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중에 공과격(功過格)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과격이란 착한 일과 악한 일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규정을 말한다. 중국 사람들은 사회생활, 가정생활의 일체 행위를 공격과 과격으로 분류하고, 다시 조목조목 세분화시켜서 각 행위의 결과를 수량적으로 계산해서 판정할 수 있도록 공과 과의 점수를 매긴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의 현실적인 기질이 종교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매일 자기 전에 하루 동안의 공과를 더하기와 빼기로 계산하고, 월말에는 월계를 내고, 연말에는 총결산을 낸다고 한다. 공의 점수가 많으면 좋은 업보가 있고, 반대이면 불행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 스스로 자기 운명을 좌우할 수 있고 장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 자기 행위의 여부에 따라 길흉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대인들도 구약성경 전체에서 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613개의 계명을 찾아냈다. 그중에 248개는 긍정적인 계명이었고 365개는 부정적인 계명이었다. 그 모든 계명을 다 지키려는 노력은 가상한 것이었지만 가능하거나 현실적인 것은 아니었다.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려고 노력했던 유대인들 중에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그들에게 일곱 번이나 화를 선언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문제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했어야 하지만,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성경은 계속하여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꼬집으면서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 같다.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점수를 따서 좋은 성적표를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중요시하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성적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중요시하는 것은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사랑의 마음 상태다. 바람직한 행위는 사랑의 결과일 뿐이다. 우리 역시 지금도 행위에 근거한 성적표에 연연하고 있는 인생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이달 한남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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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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