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국립수목원 박사
이유미 국립수목원 박사
'기생'의 사전적인 의미는 생물학적으로는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이 함께 살며 한쪽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이 해를 입고 있는 일이나 그런 생활 형태를 말합니다. 식물 중에서 유명한 기생식물은 아무래도 겨우살이입니다. 나뭇가지에 붙어 새집처럼 둥글게 엉켜 삽니다. 크게 자라면 1m씩도 자란다고 하네요. 기주가 되는 나무에 쐐기형의 뿌리를 박고 양분을 빼앗아 살아가지요. 기생뿌리가 박힌 나무는 양분도 빼앗기지만 목재로도 못 쓰게 되고, 씨앗을 옮겨주는 새들에게는 영양가 있는 과육도 제공하지 않고 바로 배설하게 만들며, 기주목이 죽어가도 절대로 스스로 만든 양분을 나누어주지 않는다니 정말 얌체 같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기생 곤충 중 가장 작은 곤충은 메가프라그마 마이리페네(Megaphragma mymaripenne)인데 크기는 약 200μm 남짓으로 단세포생물인 아메바보다도 작은 몸집이라네요. 이 곤충은 원예작물을 손상시키는 해충 중 하나인 총채벌레의 알에 기생하여 유충이 총채벌레의 알을 먹고 자란다고 하네요. 재미있는 것은 기생하려면 몸집을 줄여야 효과적인데 중추 신경계의 크기를 줄이는 게 가장 고민이라네요. 먹이를 찾고 천적을 피하고 짝과 숙주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 발달된 신경계를 가져야 되기 때문이죠. 몸집을 줄인다고 뇌를 아예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서 이 녀석은 신경계에서 핵을 없애 버렸답니다. 참 과감하죠! 식물이나 곤충이나 사람이나 기생하고 살아가려면 이리저리 신경 쓸 일이 많은 듯합니다. 그냥 조금 희생하며 마음 편히 사는 게 낫다 싶기도 하네요.

요즈음 이 기생생물들의 새로운 가치가 나오고 있습니다. 얌체 같던 겨우살이에 사람의 암을 치료하는 항암성분이 많이 있고요, 기생벌 종류들은 해충을 방제하는 자연적인 천적자원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한 면만 보고 좋고 나쁨을 가리는 것은 경솔한 일이라는 반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우리 주변에서 남한테 피해만 주고 살아간다고 함부로 손가락질한 사람이 있나도 되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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