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국립수목원 박사
이유미 국립수목원 박사
비 그치고 난 후의 봄 햇살은 더욱 맑고 눈부십니다. 양지바른 길가에 봄꽃들이 한창입니다. 매년 이사를 다니는 봄꽃들이 많나 봅니다. 올해는 광릉숲에 유난히 복수초와 현호색이 지천이고 얼레지는 자주 나타나지 않네요. 올해 유난히 눈길을 끄는 풀꽃은 깽깽이풀입니다. 두 주 전쯤 한택식물원에서 그 환하고 아름다운 밝은 보랏빛의 꽃들을 만났는데 저희 광릉의 국립수목원엔 지난주부터 한창입니다.

이 귀한 깽깽이풀을 이렇게 실컷 보다니 꿈만 같습니다. 이 땅에서 거의 사라져간 대표적인 희귀식물인데, 저희 수목원에서 열심히 찾아내고 보전하고 증식하여 놓은 보람이 있네요. 사실 수목원과 식물원은 이렇게 자생지에서 위태로운 식물들을 안전한 피난처에 보존하는 중요한 기능도 하고 있답니다. 깽깽이풀은 이름도 참 정답지요? 왜 이런 이름이 붙었나 고민고민해 보았는데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깽깽이풀이 자라는 곳에 가 보면 크게 퍼져 모여 피는 것이 아니라 줄지어 듬성듬성 포기가 이어지는데 마치 깽깽이 발 즉 한 발로 껑충껑충 건너뛰어 간 흔적 같아서라고요. 이 말의 진실은 전 알 수 없으나 분명 깽깽이풀은 그리 자랍니다.

그 이유를 찾아보니 개미가 이 깽깽이풀의 씨앗을 물고 일정한 길을 따라 자기 집으로 가다 중간에 떨어트린 곳에서 싹이 난 것이 줄 모양이 된 것이라고 하네요. 왜 하필 개미는 깽깽이풀의 씨앗을 좋아할까요? 씨앗의 끝부분에 달콤한 향기를 내는 일종의 양분덩어리가 붙어 있는데 개미들은 이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깽깽이풀의 씨앗을 나르는 것이지요. 씨앗에 날개도 없고 솜털도 없어 자신의 핏줄을 멀리멀리 퍼트릴 방법이 없는 깽깽이풀이 개미의 힘을 빌리고자 만들어낸 지혜인 셈입니다. 물론 개미에게도 남는 게 있고요.

갑작스레 꽃잎을 펼쳐내며 환하게 웃던, 눈부신 연보랏빛 깽깽이풀 꽃잎이 다 지고 나도 너무 섭섭해하지는 마세요. 곧 마치 '쑥' 하고 소리를 낼 것처럼 자라 올라오는 귀여운 잎새들이 펼쳐질 것이고요, 그 다음엔 열매가 익거든 씨앗을 지고 가는 개미 구경이 남아 있으니까요.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 가득한 봄 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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