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사는 가족 삶의 원동력 서로 보듬는 관계 행복느껴 마음 부족한 사회 공허·황량 사랑·섬김 우리 풍요롭게해 "

안셀름 그륀은 '두통 천사'라는 글에서 자신이 힘든 일로 과로를 할 때면 항상 두통이 찾아왔다고 한다. 일단 두통이 찾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몹시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그때마다 기도하기를 "천사를 보내주셔서 나의 아픈 머리를 고쳐주세요"라고 했지만 한 번도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시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 것은 그 두통 자체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통에 천사라는 이름을 붙여 두통 천사라고 불렀다. 머리를 과도하게 쓰고 신경을 곤두세워 걱정을 하는 것을 그만두도록 하나님이 보낸 천사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네 삶도 머리 아픈 일투성이다. 평소 몸을 많이 쓰는 사람은 몸이 아프고 마음을 많이 쓰는 사람은 마음이 아프고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은 머리가 아픈 법이다. 우리네 삶이 머리 쓸 일들이 많아서 골치 아픈 것도 있겠지만 오늘날은 과거와 다르게 머리를 주로 쓰는 삶의 패턴 때문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과 머리가 균형 잡힌 생활을 할 수 있어야 건강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 아픈 것이 낫고 마음 아픈 것보다 머리 아픈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리조트 붕괴 사고로 부산외대 학생들이 죽은 사건은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슬픔을 당한 가족의 아픔과는 비교될 수야 없겠지만 그 또래의 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제 자식 생각에 마음이 더 아팠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남북이산가족들의 만남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이 아팠다. 가족은 같이 살아야 하는데 잠시 잠깐 만났다 기약도 없이 다시 헤어지는 모습을 보며 함께 마음이 울컥했다.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 너무 당연하고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겠지만 이것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살고 있는 한(恨) 맺힌 인생들이 많다. 살아 있을 때 그나마 얼굴이라도 한 번 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되어서 만날 수 없고 기회가 없어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이 어찌 한둘이겠는가. 가족이 함께 사는 보통 가정의 평범한 일상들이 누구에는 기적인 것이다.

매일 무덤덤하게 지내는 우리 가족들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지탱하여 주는 큰 힘의 원천이다. 가족 때문에 머리 아픈 일도 있겠지만 서로의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고 따뜻하게 하여 주는 데는 식구만 한 것이 없다. 식구(食口)는 '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가족이 함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보통 어렵지 않던 때에 생겨난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우리네는 언제부턴지 밥걱정 없이 살기에 이 소중함을 간과한 듯싶지만 음식을 나누는 것은 곧 생명을 나누는 숭고한 일이다. 가족이 함께 밥을 나누는 것이 소중한 것은 밥이 우리의 몸을 따뜻하게 하지만 밥을 함께 나누는 식구는 우리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 삶을 메마르게 하는 것은 물질의 부족보다 마음의 부족 때문이다. '교실의 위기'를 쓴 교육학자 실버맨은 오늘 학교 교실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 없이 학생들을 교육하기에 학교 현장이 황폐화되었다고도 했다. 전통적으로 미국 교육의 목표는 3R로서 읽기(Reading), 쓰기(Writing), 셈하기(Arithmetic)였는데, 오늘에 와서는 술(Rum), 반항(Rebellion), 폭동(Riot)으로 변했다고 했다. 사랑이 떠난 자리는 아픔과 그리움이라도 남겠지만 마음이 떠난 자리는 폐허와 공허만이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가정을 건강하게 하고 사회를 밝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마음 없는 세상을 향하여 예수께서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몸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 경쟁과 노력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 같아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사랑과 섬김이다. 밥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차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서로를 향해 따뜻한 인사 한마디와 차 한잔을 나누는 여유를 통해 서로의 마음들이 따뜻하여지기를 기도한다.

김홍관 목원대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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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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