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국립수목원 박사
이유미 국립수목원 박사
아직 꽃샘 추위가 여러 번 남아 있겠지만, 어쩐지 겨울이 저만치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긴 입춘이다. 절기를 속일 수는 없는 일인가보다. 이즈음이면 눈에 보이는 파릇한 새싹은 아직 보이지 않더라도 새봄에 잎과 꽃으로 태어난 겨울눈들은 부풀어 오르고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뭇가지엔 탄력이 살아난다.

이즈음, 수난을 당하는 나무가 하나 있다. 바로 고로쇠나무이다. 깊은 산 어귀엔 고로쇠나무 수액(樹液)을 판다는 간판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봄이 오는 첫 순간을 가장 일찍,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고로쇠나무 수액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와 같은 집안의 나무인데 잎이 단풍나무처럼 5-7갈래로 갈라져 있으나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없이 매끈하고 가을엔 노란색으로 물드는 경우가 더 많아 한 번 알고 나면 구분이 쉽다. 수액이란 나무의 도관을 흐르는 액체를 말한다. 나무에게 있어서도 물은 곧 생명이어서 물을 통해 양분을 포함한 모든 물질이 이동되고, 세포 내의 모든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봄이 되어 새로운 생명활동을 시작한 나무들이 땅속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여 잎 끝으로 증산하는 그 중간 과정에 있는 수액을 사람들이 중간에 일부 덜어가는(가로채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마시는 고로쇠 수액이다. 수액이란 모든 나무에 다 흐르지만 특히 고로쇠나무를 비롯한 단풍나무 집안의 수액이 많고 달며, 연중 수액은 흐르지만 일교차가 큰 봄에 채취할 수 있을 만큼 많다.

산에 갔다가 나무줄기에 구멍이 뚫리고 주렁주렁 플라스틱 관이나 통을 매달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 마음이 정말 아프다. 나무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앞선다. 정말 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존재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어린 나무는 두고 나무의 지름 30㎝를 기준으로 그 미만은 1개, 그 이상은 2개로 제한한 구멍 숫자만 잘 지키고, 수액을 뽑았던 구멍을 잘 막아주기만 하면 매년 이 혜택을 얻을 수 있으련만. 수액을 한 해에 많이 얻으려고 많은 구멍을 뚫고 방치해 나무들은 상처입는다. 결국엔 이 천혜의 선물을 잃고 마는 경우가 많게 돼 서글프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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