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에 필자는 아내와 함께 서울에 갔다. 늘 활기차고 사람으로 붐비던 서울이 너무 조용하고 한적해서 낯설기도 했다. 그런 차분한 낯섦이 오히려 우리 부부에게는 색다른 여행 경험이 되었다.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다닐 필요도 없었고 백화점과 큰 상점들도 대부분 닫아서 돈도 절약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KTX를 타고 서울을 다녀왔다. 한국에선 추석 명절에 민족대이동으로 교통대란으로 몸살을 앓는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고 사람들은 귀향길의 고단함은커녕 여유 있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농경시대에 비해 의미는 작아졌지만 추석은 풍요로운 수확에 대해 조상께 감사하고 가족과 친지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 건 미국인인 필자가 보기에도 참 따뜻한 문화이다. 봄과 여름내 농사를 지으며 흘린 땀과 고통스러웠던 모든 것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상을 차리면서 그해 겨울까지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는 기쁨으로 변한다. 한국에 추석이 있는 것처럼 미국에는 추수감사절이 있다. 11월 4번째 주 목요일이다. 미국도 가족끼리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소스를 뿌려서 구운 칠면조와 옥수수빵, 설탕을 친 감자, 호박파이 등을 먹으며 감사하고 축하한다. 한국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고 지인이 말해줬다. 미국 추수감사절에는 'Gobble Gobble'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칠면조가 내는 소리를 뜻하기도 하고 빠른 시간 내에 많이 먹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Don't eat too much'(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라는 인사말을 건네기도 하는데 이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추수감사절은 1620년 65일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에 정착한 영국 청교도들이 다음 해 11월 추수를 마치고 축제를 연 데서 기원한다. 102명이었던 청도교들은 식량난과 매사추세츠의 혹독한 겨울을 지내며 반 정도만 살아남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낯선 땅에서 얻은 첫 수확물로 신께 감사를 드렸고 인디언들과도 화친을 맺어 사슴 5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생존을 위협받는 고통이 있었지만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기에 미국은 현재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석 즈음에 학교 동료가 부모님 묘소에 인사를 드렸냐고 물어왔다.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신 신시내티는 7000마일(약 1만 1265㎞), 미국집이 있는 애틀랜타에서도 500마일(약 804㎞) 떨어진 거리다.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했다. 이 지면을 통해 밝힌 바 있지만 이미 반은 한국인이 된 나는 굉장한 불효자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가슴 한쪽이 아려오는 것 같았다.

사실 아시아 안보 전문가로 외국에 체류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부모님의 묘소를 다녀오는 건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대신 아시아 안보에 기여하고 건강하게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또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 부모님도 이런 필자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감사는 고통을 기쁨으로 변화시킨다.

추석 연휴에 주변 지인들이 모두 고향을 찾고 부모님과 가족을 만나러 떠나니 필자의 부부는 잠시나마 외로움을 느꼈다. '외롭다'고 하는 말은 아마도 인간의 가장 슬픈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서울로의 짧은 여행으로 외로울 수도 있는 시간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5일이나 되는 긴 연휴 동안 중구 은행동에도 나갔다. 스카이로드라는 최첨단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구경할 수 있었다. 보도 위 천장에 길게 놓인 설치물로 훌륭한 공간이미지를 연출해 내 쇼핑을 위해 나온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우리 부부도 한쪽에 앉아 최첨단 기술이 뽐내는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적당한 장소와 적절한 시간에 우리 부부가 건강하게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난생처음 이색적인 구경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우리 부부의 감사는 외로움 뒤에 오는 공허함을 몰아내고 기쁨과 행복을 불렀다. 조상에게 혹은 신에게 감사하기 위해 생겨난 추석과 추수감사절. 두 나라의 명절을 생각하며 감사의 지혜를 배웠다.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마법을 배웠다.

존 엔디컷 우송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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