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관 목원대학교회 담임목사

정호승의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에 일본의 궁목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천년 이상 갈 수 있는 사찰이나 궁궐을 짓는 목수를 궁목수라 하는데, 이런 견고한 건물을 위해선 무엇보다 천년 이상 된 노송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깊은 산 어딘가에서 천년 세월의 온갖 풍상(風霜)을 겪으며 견딘 나무라야 천년을 지고 갈 건물의 목재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는 사람과 다르게 두 개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데, 생명을 지닌 나무로서의 수령(樹齡)과 죽어 목재로 쓰이는 나이이다. 이 두 개의 나이는 공교롭게도 서로 비례하여 오래된 나무가 목재로도 오래가게 된다고 한다. 견딤의 기간이 쓰임의 기간을 결정하여 견딘 만큼 쓰임을 받게 된다는 소중한 삶의 이치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였던 모세는 견딘 만큼 쓰임을 받았던 대표적 인물로 볼 수 있다. 모세는 도망자 신분으로 40년간 고통스럽게 망명생활을 하였지만, 그 후에 꼭 40년간 민족의 지도자로 쓰임을 받았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200만의 동족을 이끌고 어렵게 탈출하여 오늘의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지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모세는 자신의 종족 가운데 한 사람이 이집트 사람으로부터 부당하게 매질을 당하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 이것이 밝혀질 것을 두려워하여 광야로 도피한 모세는 그 당시 가장 천대받던 목동으로 40년 세월을 보냈다. 높은 지위를 유지하며 부족함 없이 살던 모세로서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역경과 시련이 감내하기 어려운 인내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모세에게 이 긴 시간들이 당시로서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아무 쓸모 없는 것으로 느껴졌겠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미래를 충분히 준비하는 전화위복의 과정이 되었다. '채근담'에 '오래 엎드린 새가 날 때는 반드시 높이 오른다'는 말이 있다. 높은 산일수록 그 골짝기가 더 깊듯이 무언가를 크게 이루기까지는 겉으로 들어나지 않지만 많은 인고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시련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련은 피하고 고통은 줄여나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인간 역사를 살펴봐도 알 수 있듯이 과학과 산업의 발전 목적이 생활의 불편함과 힘든 일들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利器)들도 이런 과정에서 개발되고 발전되어 온 것들이다. 이것들로 우리의 생활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해졌고 편리해졌다.

그러나 이렇게 바뀐 삶의 환경들이 현대인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성향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어렵고 힘든 일들은 가급적 회피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시련을 견디는 힘을 기를 수 없게 된 것이다. 성경에 보면 '시련을 통하여 인내가 길러지고 인내를 통하여 보다 성숙한 사람이 되어 간다'고 한다. 어른과 다르게 아직 미숙한 어린아이들의 특징은 잘 참지 못하는 것이다. 어려운 것을 견디는 인내력이 없기 때문에 때와 장소와 상관없이 행동을 한다. 이런 아이들도 성장하면서 인내심이 점차 길러져 자신을 스스로 절제할 줄도 알게 되고 힘든 일들을 잘 이겨내게 된다.

베스트셀러 '마시멜로의 이야기'에 '만족지연'에 대한 실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캔디를 주면서 '15분 동안을 기다리면 하나의 캔디를 더 주겠다'는 제안에 참고 견디는 아이들의 학업성취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취하여야 할 목표를 위해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불편하여 바꿔야 할 것과 참고 기다리면서 인내해야 하는 것은 따로 있다. 이 두 가지를 잘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참된 지혜일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말처럼,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함이 있어야 하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성공이 때로 우연과 행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뒤에는 대부분 많은 시련과 인내의 과정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모든 성공은 인내의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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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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