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길암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인문한국연구센터 교수

최근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북경에 가게 됐다. 거기서 종교 관계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한 학자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 학자분이 한 얘기가 꽤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는데, 얘기인즉슨 "특정 종교현상이 사회의 공존과 화합에 저해되지 않는 한 국가의 종교 정책은 무정책이 최상책이다"라는 주장이었다. 그 얘기를 듣다가 MB정부 시절 행해졌던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된 정책 때문에 적잖은 사회적 갈등이 상존했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됐다. 그런데 최근 다시 그 MB정부 시절에 특정 종교에 의도적으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공작정치 관련 문건이 공개되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종교가 항상 그리고 절대적으로 선(善)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기에 몇 자 적는다.

전 세계를 통틀어 보아도 그리고 전 시대를 통틀어 보아도 한국 사회만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사회는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다종교 사회라고 하더라도 특정 종교가 우월한 지위를 점한 상태에서 여러 다른 종교들의 존재가 인정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주도적인 종교가 다른 종교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도 있고 혹은 극한의 대립과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따라서 특정 시대와 사회의 종교현상을 기준으로 특정 종교에 대해 항상적인 포용성이나 항상적인 배타성을 기대하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특정 종교가 절대적으로 우월적인 지위를 점하지 못한 상태에서 특정 종교가 국가에 대해 편향정책을 요구하는 것도, 또 국가가 그러한 편향정책을 취하는 것도, 어느 것이든 그 사회 내부의 평화와 공존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태도이다. 더군다나 비슷한 규모를 가진 각각의 다른 종교들이 경쟁적인 신도 늘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불교, 개신교, 가톨릭은 대표적인 종교 집단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가르침 혹은 공자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더라도, 그 가르침의 핵심에는 인류 하나하나가 모두 그 자체로 귀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자비와 사랑을 놓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렇게 귀한 그들 하나하나의 참된 가치가 온전히 발휘되기 위한 울타리로서 사회 혹은 국가가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 있어서도 성인들의 생각은 일치한다.

종교를 창시한 성인들은 그들의 가르침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을 무조건 맹신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이상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그것을 통해서 모두가 참답고 행복하게 되는 세상을 바랐기 때문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종교인들의 경쟁을 보면 그들 훌륭한 스승들의 고매한 이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고매한 이상의 실현은 저 뒷전에 밀쳐두고서 경쟁적으로 세를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혹은 다른 종교인은 개종(改宗)의 대상이거나 멸망시켜 없애버려야 할 이단으로 간주된다.

그러한 일들이 사회 내부에서 당연한 듯이 자행될 때 종교는 고귀한 존재들을 폭력으로 파괴해버리는 악(惡)에 지나지 않게 된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세를 불리기 위해 전도하고 전법했다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우스운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처님의 고민도, 예수님의 고민도, 그 고민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우리 모두가 좀 더 잘 살 수 있도록, 모두에 속하는 한 생명 한 생명이 있는 그대로 아름다울 수 있고, 또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데, 그분들의 고민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온당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인정하고 동의한다면 세를 불리고, 그 불려진 세를 통해 종교적 진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또 타인에게 강요하는 일이야말로 그들의 가르침을 온전히 거역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종교현실은 종교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내세운 집단의 폭력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 것일까? 혹 당신이 종교인이라면 자문해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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