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길암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인문한국연구센터 교수

"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대시 많은 것들 함께 사는게 세상 만물 비슷할 뿐 똑같지 않아 상호간 가치 인정해야 평화 "

지난 12월의 대통령 선거를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쉽사리 자신이 행한 일들에 대해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일일지라도 지금 당면한 삶의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쉽게 그것을 자신의 주변으로부터 밀어내버린다. 그리고 이미 잊어버렸다면, 당신은 당신의 삶을 결정하는 한 표의 귀중함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는 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다.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행한 선택에 대해서 언제나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어쨌든 갑작스럽게(?) 이미 철 지나버린 대통령 선거를 얘기하는 것은 그날에 이어졌던 후폭풍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선거가 끝난 뒤, 당연스럽게 국민들의 선거권이 어떤 성향을 따라 행사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른바 51 대 49의 선택은 극명하게 대조적인 두 집단이 서로 적대적인 선택을 한 결과인 것처럼 포장되었다. 그래서 한쪽은 승리했고, 그래서 한쪽은 패배했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가장 대표적인 분석 중의 하나가 바로 중노년층과 청장년층 간의 대립이라는 분석이었다. 이어진 것은 기초노령연금을 둘러싼 복지 논쟁, 현재 사회의 벌이를 담당하는 젊은 층에서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거센 반발이 등장했다.

여기에서 정말 우려스러운 것은 대조적인 두 집단이 서로 적대적인 입장에 서 있는 '쳐부수어야 할 적'인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정말 그 두 집단은 서로 상대를 용납하지 못하는 적대적인 집단군인 것인가? 일부 단세포적인 언론들은 너무도 쉽게 그렇게 호도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들은 결코 서로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두 집단이 아니다. 그렇게 언론이 적대적인 것처럼 외쳤던 두 집단은 실은 같은 울타리 안에서 하나의 가정, 하나의 직장, 하나의 사회,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동일한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그 공동체의 삶을 꾸려가는 주역들이다. 그 구성원들 중에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우리는 '찬성'과 '반대'라는 말을 사용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찬성한다고 해서 100% 찬성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 것인가? 반대한다고 해서 100% 반대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생각은 저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찬성이라고 해서 100% 찬성이 아닌 것처럼, 반대한다고 해서 100% 반대가 아닌 것처럼, 구성원들의 생각에는 저마다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서로 반대하는 것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세상은 서로 적대하는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이 모여 있는 삶터가 아니다. 세상은 그저 조금 혹은 많이 다른 것들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터전인 것이다. 거기에 반드시 쳐부수어야 할 적 같은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하는 얘기로 비슷한 것들끼리 모여서 무리를 짓는다고 말한다. 이른바 유유상종(類類相從)이다. 그러나 비슷한 것들은 비슷할 뿐이지 똑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곧잘 잊어버리는 것 같다. 똑같지 않다는 것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그 조금씩 다른 것들 다시 말하면 비슷한 것들이 모여서 우리는 가족을 이루고 사회를 이루고 나라를 이룬다.

사회의 최소 구성단위는 부부인데, 그 부부는 전혀 다른 것들이다. 사귈 때는 서로 같은 점만 찾아지는데, 결혼하고 부부가 되면 서로 다른 점만 보이게 된다. 그럼 서로 다른 점만 발견하게 되는 부부생활에서 갈등이 멈추게 되는 것은 언제일까?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다르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갈 때이다. 그리고 하나의 가정을 구성하는 부부의 어느 한쪽에게서도 상대방에게 적대적인 선택은 고려되지 않는다. 다만 가정의 평화 혹은 가족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다른 선택들이 끊임없이 고려될 뿐이다. 그리고 그 서로 다른 선택들이 상호간에 인정될 때 그 가정은 갈등이 아닌 평화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하고 비슷한 것들에게서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자기하고 비슷한 것들보다 다른 것들이 훨씬 많은 것이 또한 세상이다. 그 우리 삶의 가치를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세상을 바란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자기'와 다른 수없이 많은 존재들의 가치를 인정하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습일 것이다. 같은 것들이 아니라 저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울려 삶을 이루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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