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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한국의 영원한 숙제, 대학입시

2013-01-21기사 편집 2013-01-20 20: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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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전 한남대 독일어문학과 교수·대전문화재단 이사

한국의 교육 열정은, 삼성의 핸드폰 정도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 부모의 교육열은 세계 1위이고 초중고 학생들의 학과 공부 시간도 아마 세계 1위일 것이다. 그랬기에 세계 초강국이라는 미국의 대통령마저 넌지시 미국 국민들에게 한국의 학부모와 교육을 본받으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밖에서 볼 때의 이야기이다. 한국 교육은 외화내빈 정도는 아니겠지만 여전히 많은 모순을 안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국의 대학입시는 횟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자주 바뀌었다. 예전 한동안 문과, 이과 학생 모두 수능 시험에서 사회 과목과 과학 과목 모두를 시험 치러야 했다. 그러나 현재는 문과 학생은 사회 과목만을, 이과 학생은 과학 과목만 시험 치르며, 2013년 수능에서는 각 사회-과학 영역 중 3개 교과를 선택하게 되어 있고, 2014년 수능부터는 2개 교과만 선택하면 된다. 수능 시험 과목이 2000년 12개 교과에서 2014년 5개 교과로 현저히 줄어든다. 온당한 방향일까?

교육당국의 이런 정책 목표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 완화'이다. 그러나 수능 시험 과목 수 축소가 실제로 학습 부담 경감으로 이어질까? 어차피 수능 시험은 수험생들을 상대평가하는 제도이고 이때 중요한 것은 변별력이다. 한정된 교과 안에서 시험이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시험의 난이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것도 국-영-수 과목에서 학생들의 수학 능력의 변별력을 증거할 수 있는 시험이 있어야 한다. 이런 과목 난이도는 고등학교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게 하고 수험생의 보다 많은 노력의 투입을 요구하게 된다. 대신 주요 과목을 제외한 여타 과목에 대한 홀대와 무관심이 조성된다. 학생들의 지식 섭취는 편중될 수밖에 없다.

MB 정권이 출발할 즈음 '오렌지'와 '아린쥐' 파동으로 유명해졌고 지난 정권 내내 필요 이상 중요시된 영어 과목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번 수능 시험에서 영어 시험의 난이도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수험생의 경우 문법과 구문에 있어서 그들 학력의 변별은 쉽지 않을 터이다. 시험 출제자는 변별을 위해서 문장 안의 어휘 수준이나 콘텐츠의 고급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

이번 수능 영어문제 중 카메라와 우리 몸에 있는 눈의 구조를 비교 대조하며 빈칸의 내용을 추론하는 지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항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험생이 적어도 상이 망막에 맺혀 뇌에 전달되는 생물학적인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거나 지문 상에 이용된 'retina(망막)'라는 단어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문항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어휘의 난이도가 부적절한 점, 그리고 설령 이 어휘를 숙지하고 있는 수험생이라도 이 어휘의 자연과학적 의미를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실 이과계열 학생들은 사회현상이나 경제이론을 다루는 지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과계열의 학생들은 진화론이나 유전자 변형 혹은 DNA 문제 등을 다루는 과학 지문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일선 교사의 토로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혹자는 보편지식의 습득은 중학교에서 모두 이뤄진다고 반박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아직 멀리 있는 중학교 시기의 학습이 대학입시에 활용될 수 있을 만큼 충분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그 시기의 학습을 통해 고교생이 본인의 흥미와 재능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덧붙이자면 지나친 도구교과(영어, 수학)의 강조와 내용교과(사회, 과학)에 대한 홀대는 학교 현장에서도 운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 MB 정부 아래 도입된 자율학교, 자율형 사립고 등에 주었던 커리큘럼의 유연성은 도구교과의 최대화, 내용교과의 최소화를 초래하여 수능 성적 향상을 위해 수능에서 평가하는 비중이 적은 내용교과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때문에 사회 교과나 과학 교과 교사들은 시수를 두고 아등바등 밥그릇 싸움을 해야 하는 비참한 지경에 내몰렸다. 또 국-영-수 중심의 고교 교육은 이 교과의 난이도를 더욱 높여서 선행학습을 필두로 한 과도한 사교육 유발의 주범이 되었다.

필자는 예비고사와 대학 본고사에서 16개 교과목을 시험 치러야 했던 세대에 속한다. 그때의 힘들었던 공부가 아련한 옛일이지만 대학 이후 공부에 적잖게 유익했다고 믿고 있다. 지난 대선의 한 유력 후보는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 현행의 '좁고 깊은' 교육보다는 '넓고 얕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그 의견에 개인적으로 매우 동의한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융·복합적 지식체계의 구축을 위해서는 전혀 이질적인 영역들의 조합과 어울림이 필수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역설했던 '혁신'이라는 것들이 미학과 인문주의, 과학기술의 어울림의 결과가 아니던가. 우리의 현행 고교교육과 대학입시는 그런 의미에서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 향후 5년을 설계하는 이때 큰 틀에서 대학입시를 다시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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