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최종편집일 : 2017-12-12 23:55

[대일논단] 빗나간 열정과 냉소 사이

2012-12-13기사 편집 2012-12-12 21:28:41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폴라로
  • 핀터레스트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가만히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올해도 '아차' 하고 탄식하게 만드는 실수가 생각난다. 혼자 있을 때 얼굴이 붉어지게 하는 그런 실수를 열정이 빚어낸 작은 에피소드라고 애써 자위해 보지만 어쩐지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 '열정'이 가족이나 주변의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고, 심지어 상처를 주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던 일들이 지금에 와서 보면 그렇게까지 핏대를 올릴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 '열정'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부족한 나의 됨됨이가 초래한 광분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실수에 앞서서 찾아온 교만함도 한몫을 했으리라. 지나친 열정은 통제를 벗어난 불과 같다. 아궁이를 벗어난 불이 집을 태우는 것처럼 잘못된 열정은 파괴적일 수 있다. 개인 간의 관계를 해치는 것은 물론 히틀러의 열정처럼 대학살을 초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열정이 없이는 어떤 일도 시작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 열정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은 '변화를 향한 욕구'인 것이다. 변화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면 열정이 없고, 열정이 없다면 어느 개인이나 조직도 발전하지 않는다.

지나친 열정보다 더 나쁜 것은 냉소이다. 냉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한때 품었던 열정에 대해 말한다. 이들은 한때 자신의 뜨거웠던 열정이 차갑게 식게 된 원인으로 잘못된 지도자, 조직이나 환경 또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한 사람들의 탓으로 돌린다.

그런데 그 냉소주의자가 한때 품었다는 그 열정이 애초부터 올바른 열정이었을까? 순수한 열정이라면 외부적 요인에 의해 그렇게 쉽게 식어버릴 리가 없다. 순수하지 못한 열정의 배경에는 명예욕, 성취욕, 금전욕 같은 욕심이 도사리고 있다. 이처럼 그릇된 열정은 중간에 실패를 경험할 때 쉽게 냉소로 변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열정이 보다 큰 이타적인 가치를 품을 때 개인적 득실과 관계없이 그리고 비록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가슴에는 열정의 불씨가 계속 간직되어 새로운 발화의 기회를 기다린다.

빗나간 열정주의자에게서 겸허함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나의 생각과 주장만이 옳고 자신과 다른 의견은 언제나 틀렸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에겐 언제나 비난과 타도의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교만하다는 점에서는 냉소주의자도 다를 바가 없다. 냉소주의자에게는 자신이 주연이 될 수 없는 잘못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이 여기에 보태진다.

이제 국가의 지도자를 뽑는 대선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그 어느 때보다 보수와 진보의 결전 양상이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두 후보자 모두 변화를 말한다. 변화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그들의 호소에서 열정이 묻어난다. 후보자들 모두 이 나라가 직면한 여러 가지 위기와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어떤 방법이 정답인지 내 짧은 식견으로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얼마 후면 국민의 선택에 의해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누가 승자가 되든지 자신이 속한 진영의 주장이 옳았기 때문에 승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민주주의 선거에서의 승리란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몇 퍼센트 사람들이 더 많은 지지를 보낸 결과일 뿐이다. 이 점을 착각했던 지도자가 빗나간 열정으로 조직이나 나라를 이끌려 하다가 실패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비록 선거의 과정에서 후보자들은 보수와 진보라는 두 진영을 대표하여 국민의 선택을 구하지만 일단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지도자가 되면 한 진영의 선두가 아니라 그 중간 어디쯤엔가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저쪽 반대편,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의 소리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48퍼센트나 49퍼센트쯤의 지지를 받아 아쉽게 선거에 패배하게 될 후보 측에게는 그 열정을 계속 간직하길 바란다. 선거의 패배로 인해 애초의 열정이 식어 냉소로 변한다면 당신들의 열정은 처음부터 올바른 열정이 아니었으므로.

조직에서나 국가에서나 진정한 위기는 모두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른다고 생각할 때가 아니라, 모두가 안다고 주장할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이번 선거로 인해 또다시 수많은 빗나간 열정주의자 또는 냉소주의자들이 탄생될까 걱정된다. 그릇된 열정과 냉소는 전염되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이 지나친 열정과 냉소에 전염되면 아무도 서로의 소리에 겸허히 귀 기울이지 않게 된다. 내가 저지른 이런저런 실수들이 교만에서 비롯되었음을 다시 상기하며 부끄러움 속에 한 해를 보낸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