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과 교수

어떤 사람의 행동이 못마땅할 때 비아냥거리는 말로 "놀∼고 있네"라고 한다. 우리 사회처럼 근면과 성실이 최고의 가치인 사회에서 '노는 것'은 당연히 비난을 받아야 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왜 우리는 노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까? 이는 노는 것과 게으른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같은 뜻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50여 년간 우리나라가 세계사에 유례가 없이 초고속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근면함과 함께 '빨리빨리' 문화가 자리 잡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는 수많은 '일중독자'를 양산하는 원인이 되었다. 지난 시절 압축성장의 가장 큰 공로자인 기성세대에 있어서 근면함은 신앙적인 가치가 되었고 놀이는 나태함과 동의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는 업무의 질적 성취보다는 기계적인 일의 양이 우선시될 때가 많다. 근무시간이 지나서 상사가 책상에 앉아 있는데 이미 할 일을 끝낸 직장인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기는 힘든 것이 일반적인 사회 분위기이다.

이들이 가정에서는 일중독자 부모가 된다. 이 헌신적인 부모들이야말로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희생하는 것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긴다. 생산과 재화로 환원시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해서는 죄의식을 갖는다. 그래서 모처럼 가족과 함께 갖는 휴식의 시간이 왠지 불안하고, 심지어는 주체할 수 없는 지루함으로 다가온다.

이런 부모들에게 수학책을 한옆으로 치우고 놀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는 것은 큰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다. 이들에게 쉼과 놀이는 죄악이며, 숭고한 삶에 대한 모독이다. 삶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아이에게 반복하여 말하는 동안에 아이와의 소통은 단절되고 만다. 즉 "나(부모)는 바로 너희(미래)를 위하여 나(현재)를 희생해 왔다"라고 말한다. 어린 세대에게 저항감을 심어 주는 말로서 이보다 더 효과적인 말이 또 있을까?

흔히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즐기란 말이야. 공부를!'이라고 일중독자 부모는 말한다. 정말 구제불능이다.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만을 갖다 대어 비교함으로써 이들 마음에 싹트는 호기심과 창의력은 사정없이 짓밟히고 만다.

사실 일중독자는 '일'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어떤 성과를 위해서 그 '일'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하지만 증가하기만 하는 자살률, 학교폭력 등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현상을 보면 더 이상 일을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놀이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한경애 저)'에서는 영화 '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을 예로 들어 놀이의 위대한 교육적 가치를 설명한다. 이 영화는 못생기고 덜떨어진 로커 음악선생을 통해 아이들이 성적에서 처음으로 해방되어 무엇인가 몰입하여 자신을 시험하고 발견하고 성취하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놀이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므로 그 성패가 중요하지 않다. 한바탕 신나게 노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를 발견하고 훌쩍 성장한다. 공연을 통해 아이들은 로커가 되는 과정이 아니라 스스로 한계를 돌파하고 만들어가는 창조의 과정을 배운다.

강남스타일은 또 다른 놀이의 승리를 보여준다. 싸이의 글로벌한 성공에는 물론 그간 축적된 케이팝(k-pop)의 인기도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기존의 케이팝을 훌쩍 넘어선 그 인기의 추동력은 무엇일까. 미국에서 금의환향하고 나서 인터뷰에서 했던 말에 그 힌트가 있지 않을까? '계속해서 모범적이지 않고 싶다'고 한 말이다. 기존의 틀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기에 기존의 케이팝에서 볼 수 있는 세련되고 섹시하며 아크로바틱한 율동이 아니라 촌스럽고 코믹한 몸짓을 통해 현실의 진짜 강남스타일에 대한 풍자적 의미를 담아낼 수 있었다. 모범적이지 않으려 했기에 이미 만들어진 한 가지 규칙, 즉 '성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을까? '빨리빨리'라는 효율을 다투는 시간 안에서는 결코 성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군대를 두 번 가야 했던 싸이에게 남보다는 느리게 갔을 시간들. 결코 모범적이지 않았던 뒤처진 그 시간들이 그에게는 창조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지치면 지는 것이다. 미치면 이기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노는 자의 힘을 느낀다. 창조의 힘을 느낀다. 시계를 쳐다보는 경쟁 속에서 우리는 지치고, 시간을 잊어버린 재미 속에서 우리는 미친다. 모두들 조금씩 더 놀고, 조금씩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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