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학자·군인의 시각으로 날씨와 전쟁 관계 재조명 "기후가 역사를 바꾼다"

 날씨가 바꾼 서프라이징 세계사
반기성 지음·플래닛미디어·348쪽·1만8000원
날씨가 바꾼 서프라이징 세계사 반기성 지음·플래닛미디어·348쪽·1만8000원
최근 지구가 겪고 있는 온난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기온상승, 집중호우, 태풍의 강도강화, 심각한 사막화, 해수면의 상승 등 어떤 것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탄소배출을 감축해 일단 더 이상의 기후변화를 저지하고자 절약하기, 나무심기 등 작은 노력들에도 국제적인 감축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많은 미래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국지적인 분쟁이 빈발하고 최악의 경우 핵전쟁까지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날씨는 인류의 역사를 만들고 지배한다. 또 날씨라는 잣대로 문명의 흥망성쇠와 전쟁의 승패가 좌우됐다.

수수께끼 같은 발해 멸망은 백두산 폭발과 관련이 있을까?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 정복에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은 이 나라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나? 이 모든 역사적 사실 뒤에는 날씨가 숨어 있었다. 역사 뒤에 숨어있는 날씨 이야기가 새삼 흥미롭게 다가온다.

충북 충주 출신인 저자 반기성 씨는 날씨를 통해 인류문명의 흥망과 전쟁의 승패 등 세계사를 심도있게 분석했다. 공군 제73기상전대장을 역임해 군사 지식에도 정통한 저자는 '날씨가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2010년)의 속편 격인 이 책에서 특히 날씨와 전쟁의 관계에 주목하며 역사의 숨은 이야기들을 날씨와 기후라는 관점에서 들여다 봤다.

히틀러의 소련 침공 등 날씨가 정복사에 영향을 미친 일화를 해박한 역사 지식과 버무려 소개했다. '모래바람으로 승리한 야르무크강 전투', '무솔리니의 그리스 침공', '조류를 이용해 승리한 단노우라 전투', '케산 전투와 안개' 등 40여 편 가까운 일화를 4부에 나눠 담았다.

중세온난기는 서기 800년 지구가 8000년 만에 맞는 따뜻한 시기를 말한다.

살을 에는 바람, 끝없이 밀려드는 해빙과 폭풍 때문에 발이 묶였던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바이킹족은 남쪽으로 눈을 돌린다. 온난하게 변한 기후를 바탕으로 그들은 빙하가 없는 조용한 바다를 누비며 정복과 탐험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덴마크 등 북유럽은 물론 프랑스 북부, 잉글랜드까지 침략해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다. 따뜻한 날씨가 빙하에 갇혔던 바이킹족을 역사의 전면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흥미로운 날씨 이야기는 대승을 거둔 장군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저자는 날씨를 이용해 승리를 거둔 장군의 공통점으로 전쟁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표현한다. 제갈공명은 요술로 바람과 비를 부르는 마술사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날씨를 관측하면서 바람의 흐름, 습기의 정도, 구름의 모양, 동물의 움직임으로 다가올 날씨를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철저하게 준비했기에 적벽대전의 대승을 이끌었다.

고구려와 부여의 전쟁사를 보면 부여의 대소왕은 병력과 장비의 우세에 의지했다. 고구려는 소수의 병력이라도 적절한 전술과 날씨를 이용했다. 전쟁의 승리가 병력의 수나 장비의 질로 결정되는 것만이 아니다. 준비된 리더의 날씨와 지형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뛰어난 전술이 고구려를 승리로 이끌게 했다는 논리다.

장수의 덕(德)중의 하나로 기상을 언급할 정도로 날씨는 중요한 덕목이다. 역사적으로 뛰어난 리더였던 알레산드로스 대왕이나 나폴레옹 등은 날씨를 잘 활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칭기즈 칸(Chingiz Khan)은 사막 날씨에 대한 철저한 준비로 호라즘(Khorezm) 왕국을 정복할 수 있었다.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이 날씨로 인해 다시 쓰인 셈이다.

날씨가 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예는 병자호란 등 우리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몽골을 통일한 후금의 태종은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면서 자신을 황제로 칭한다. 1636년 사신 용골대를 보내 군신관계를 맺고 명나라와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제정세에 무지한 조선의 인조는 용골대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에 격노한 청 태종 홍타이지는 1637년 1월 20만명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한다.

말을 타고 압록강을 건넌 대군은 임경업 장군이 지키는 백마산성을 피해 한양으로 날아가듯 달려갔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버티다가 결국 무릎을 꿇고 삼전도의 수모를 당하며 항복했다.

병자호란은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부녀자가 욕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고 수 십만명이 포로로 잡혀가기도 한 치욕적인 전쟁이었다.

이런 청나라의 쾌승에는 날씨 전략이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겨울에는 명나라가 조선을 돕고자 출병하기 어렵다는 점, 모든 강이 얼어붙어 이동에 유리하다는 점, 청나라 병사는 추위에 잘 적응됐기 때문에 전투력이 강해진다는 점 등이 주효했다.

오랜 시간 기상전문가이자 군인으로서 길을 걸어온 저자는 섣부른 역사 해석을 절제하면서도 날씨와 전쟁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후가 변하면 전쟁을 부른다." 데이비드 장(David Zhang) 홍콩대학교(University of Hong Kong)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소빙하기(小氷河期)의 추운 날씨는 식량의 감산을 불러왔고, 농업의 쇠퇴가 뒤따랐다. 농업 쇠퇴는 경제위기를 불러왔으며 전쟁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지질학자 엘즈워스 헌팅턴(Ellsworth Huntington)은 "문명은 기후의 영향을 받으며 과거의 수많은 대국들은 기후 조건에 따라서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기후 조건이 유리한 동안에는 문명이 발달했으며 로마가 무너진 것도 3세기 초반에 나타난 열악한 기후 조건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주역은 기후와 날씨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태영 연세대학교 대기과학과 교수 역시 "많은 미래학자들은 가까운 장래에 국제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요인으로 식량, 에너지, 물 문제를 꼽는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기후와 날씨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미래의 역사나 전쟁에 기후와 날씨가 더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은수 기자 limes@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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