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충원 경제부장 one@daejonilbo.com

한국형 대형마트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국내 최초의 대형마트는 이마트로 지난 1993년 11월 서울 도봉구 창동점에서 첫 문을 열었다. 대기업 자본을 무기로 구매와 유통과정에서의 비용을 절감한데다, 다양한 물품을 구비하고 있어 일반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냄으로써 대형마트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다. 첫 대형마트가 등장한이래 20년이 지난 2004년 전국 273개로 급증했으며, 2008년에는 100개나 더 늘어 385개가 성업중이다.

이처럼 소비유통 시스템이 재벌중심의 대형마트로 쏠리면서 중산층 및 중소상공인들의 고난이 심화되고 있다. 우선 대형마트의 매출이 늘어난만큼 재래시장의 매출은 줄었다. 21조5000억원이었던 2004년 대형마트의 총 매출은 4년이 지난 2008년 30조7000억원으로 9억2000만원 늘었다. 하지만 재래시장의 매출은 2004년 35조2000억원에서 2008년 25조9000억원으로 9조3000억원 줄었으며, 1개 재래시장의 하루평균 고객 수도 2755명에서 2486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대형마트들은 재래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비난여론이 일거나 정책적으로 규제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추가 출점을 자제하겠다고 결의했지만 이 기간동안에도 112개의 매장을 늘리면서 재래시장의 고사를 부추기고 있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 제조 및 유통업체에도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대형마트의 상품군은 일반 제조업체에서 만드는 NB(National Brand), 특정 마트에서만 판매되는 PB(Private Brand), 그리고 특정 유통업체의 상표가 붙은 다소 고가의 PL(Private Labal) 등으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일반적인 상품 NB외에 PB와 PL은 특정 유통업체만의 자사 브랜드 상품으로 결국 일반 소규모 제조업체의 영역까지 침범해 이들의 이익을 축소시키거나 고사시킴으로써 대형마트는 재래시장을 포함한 중소 유통업은 물론 제조업까지 장악하는 공룡으로 성장한 것이다.

2009년부터는 주유소에까지 손길을 내밀었다. 정부의 기름값 인하 유도정책에 편승한 대형마트들이 주유소사업에도 참여해 관련 업종 종사자들을 긴장시켰으며, 최근에선 대기업형 슈퍼마켓(SSM)을 통해 골목상권까지 장악하고 나섰다. 1980년대 초 대형마트 주유소를 도입한 프랑스에선 20여 년만에 주유소 수가 70%나 줄었으며, 세계 1위 대형마트 업체인 월마트의 PB제품 비율이 전체의 40%에 달하고, 독일의 알디(Aldi)는 PB제품이 무려 95%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도 대형마트의 주유소 및 제조업 참여가 향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는 자명한 일이다.

특히 한국에선 재벌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성장한 토종 대형마트들이 2006년 월마트와 까르푸 등 국내에 진출했던 다국적기업 유통업체들을 사실상 떠나게 한 저력을 감안하면, 중소 상공인들이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게다가 국내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는 인터넷쇼핑몰에 대한 대대적 리뉴얼 작업과 함께 G마켓과의 제휴를 늘리는가하면, 홈플러스는 여행과 금융상품 등 기존 유통영역의 상품을 뛰어넘는 '신 유통 서비스'판매를 확대키로 했으며, 롯데마트의 경우 PB및 PL제품 강화방안을 내놓는 등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나서는 추세다.

수도권보다 경제구조가 열악한 지방에선 이같은 대형마트의 증가와 매출성장이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지역내 전통시장과 중소 상공인들이 점차 고사되면서 지역상권을 붕괴시키며 자본의 지역외 유출로 지역경제 자체를 붕괴시키는 실정이다. 반면 대형마트의 매출대비 지역환원 비율은 백화점보다 낮아 소숫점 이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회공헌이라는 대기업의 기본적인 윤리마저 외면한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중소상인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수년간 연대투쟁을 통해 유통산업발전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해온 것도 이같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재벌기업의 횡포로부터 중소상인을 보호하고 상생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월 2회 의무휴업일 지정을 확보했지만 대형마트들은 이마저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조례제정의 절차적 하자를 빌미로 영업제한과 의무휴업 취소소송과 함께 가처분을 신청해 법원으로부터 본안소송 판결이 날 때까지 의무휴업을 하지않다도 된다는 결정을 받아낸 것이다.

지역민과 소상공인들에겐 더이상 참을 수 없는 막다른 길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대형마트 불매운동과 함께 대전에서도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이 출범했다. 향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어떻한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될 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제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동반성장을 위한 구도로 복귀할 수 있도록 대형마트의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기대해본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