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조 금강대학교 총장

최근에 열린 한 국제 세미나에서 한국 불교의 특수성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대체로 서양학자들은 이와 같은 논의 자체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그동안 한국불교의 특수성을 논의해 온 학자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그 특징을 집약한다.

첫째 호국적인 전통이 강하다는 면이다. 화랑이나 고려 때의 호국적 법회 등이 그 실례이다. 또 임진왜란 때의 승군활동 등은 가장 두드러진 한국불교적 특성이라고 보아왔다.

둘째 한국불교에는 일심(一心)사상이 강하다. 한마음으로의 회귀가 수행의 목표이자 키워드이다. 원효(617-686) 이래 한국불교의 위인들은 거의 이 일심사상에 사상적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종파적 특성보다는 다양한 불교사상을 아우르는 회통적(回通的)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사실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한국의 불교 종파는 거의 선교융합을 강조하고 있다. 종파의 특수성을 내세우기보다는 화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한국불교의 특수성은 불교사상의 보편성일 뿐 한국적 특징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만약 우리 불교가 호국적 전통을 지녔다면 이는 국수(國粹)주의일 따름이다. 일본은 제 나라 지키고, 중국은 저희 영토 지키기에 급급하다면, 불교는 그 민족주의를 누그러뜨려야지 오히려 뇌동부화해서는 안 되지 않은가.

또 원효의 일심사상은 '대승기신론'이래 거의 모든 불전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적 불교사상일 따름이다.

또 원융이니 회통이니 하는 표현에도 부정적 요소가 있을 수 있다. 개별적인 특수성이 무시된 채 오로지 전체적인 면만을 고려하는 획일주의의 냄새가 짙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화를 위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민족주의, 감성주의이다. 지역감정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자신의 고향,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다만 지나치다 보면 배타적으로 흐르고, 나와 남을 편 가르는 대립으로 흐르고 마는 것이다.

세계화라는 개념은 그와 같은 배타성 대신에 문화와 인간본성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가치관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특수성을 말살한다면 도무지 문화적 개성을 제대로 정립할 수 없지 않은가. 이 딜레마는 해묵은 것이면서 이번에 다시 부각되었을 따름이다.

나는 국제회의에서나 공사석 간에 한국불교의 특수성을 말하는 입장인데, 어느 미국인 교수는 내게 "깊은 동정심을 느낀다"고 논평한 적도 있다.

불교에는 국적이 없다. 그러나 불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국적이 있다. 전통의상을 보아도 기모노는 원피스이지만, 한복은 투피스이다. 중국인들은 음식을 고열로 조리하지만 한국인들은 주로 발효식품을 먹는다. 나는 그 차이를 찾고 인정해야 되겠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를 불상의 미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부처님께는 조금 송구스럽지만 일본불상은 한결같이 날카롭다. 눈이 위로 치켜져 있고 갸름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편견을 지우려 해도 일본불상에는 사무라이 같은 결연한 기개와 단호함이 묻어나온다. 중국불상은 지 나치게 풍만하다. 얼굴도 크고 몸집도 비만형이다.

그런데 한국불상은 꼭 마음씨 넉넉한 촌부를 닮았다. 삼화령의 미륵세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서산의 마애삼존불, 경주 남산의 칠불암 관음보살 등에서는 한결같이 너그러운 미소가 배어 나온다. 근엄하면서도 인자하고, 넉넉하면서도 위엄이 서려 있다.

특히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압권이다. 우선 중성(中性)으로 묘사한 아이디어가 놀랍다. 그 입가의 미소는 바로 달관이며 무애이다. 나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을 볼 때마다 지나칠 정도로 고뇌가 가득하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다. 그 페이소스 속에는 삶의 무게가 느껴지지만 동시에 너무 진지하기만해서 보는 이를 부담스럽게 한다.

모나리자를 볼 때면 그 미소가 묘한 비웃음처럼 느껴져서 당혹스럽다. 또 그 연령이 처녀인지 미세스인지 요령부득인 것도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완벽한 모습이다.

깨달았으면서도 중생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은 무결점의 모습이라고 느낀다. 깨달은 이의 모습을 묘사한 조각상으로는 단연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그 미소에 담긴 한국불교의 혼을 천착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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