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규 법률사무소 진언 대표변호사
강재규 법률사무소 진언 대표변호사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몇 대 몇'이라는 과실비율 산정의 문제가 발생한다. 두 대의 차량이 충돌하게 된 사고의 원인을 어느 한 쪽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양 차량의 운전자 각자가 조금 더 주의할 수는 없었는지에 대해 점검하고 고민해서 사고에 대해 각자가 실수한 잘못의 정도를 분석한다.

이처럼 일정한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대해서 사건 당사자 개개인의 과실을 반영해 책임의 비율을 정하는 것을 법적으로는 과실상계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위와 같은 교통사고에 의해 A차량 측과 B차량 측을 합해서 1000만 원의 손해가 발생했을 때, 갑자기 옆 차선으로 끼어든 A의 잘못이 80%이므로 A가 800만 원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전방을 제대로 주시하지 아니한 채 막연히 앞으로 돌진한 B도 200만 원의 책임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해배상제도는 신의칙 내지는 손해의 공평하고 타당한 분담이라는 이념을 추구하고 있다. 민사법적 영역에서 공평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많은 분쟁의 원인을 너만의 탓으로 돌리거나 나만의 탓으로 돌려두는 것만으로는 공평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개별적 사안에서 당사자들의 문제를 타당하게 해결해 주는 것에서 나아가 법적안정성 등에 대해서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울산지방법원에서 2018년에 선고됐던 사건을 살펴보자. 만 5세의 어린아이 A는 부모인 B, C와 함께 식당에 갔다. 그리고 A는 부모가 밥을 먹는 동안 혼자 식당 내 놀이방에서 놀게 됐다. A는 자기도 모르게 모형자동차 아래에 발을 넣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 어른 D가 아들과 함께 놀이방으로 들어왔고, 모형자동차에 아들을 태웠다. 이어서 D는 A가 모형자동차 아래에 발을 넣고 있는 것을 미처 확인하지 않은 채 모형자동차를 작동시켰고, 모형자동차가 작동하면서 A의 오른발을 누르는 사고가 발생했다. A는 위 사고로 '우측 발가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됐다.

다친 아이에게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인가? 책임은 누구에게 귀속돼야 할까? 이 사건에서는 심지어 이 사건의 등장인물이 아닌 사람에게까지 책임이 확장됐다. 법원은 이 사건 식당의 운영자가 위와 같은 위험의 발생을 막기 위해 놀이방 안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관리인을 배치하거나 또는 어린이가 부모의 보호·감독 없이 놀이방을 혼자 이용하지 않도록 놀이방 이용 안전수칙을 안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 사고 발생을 방지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판단해 식당의 운영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했다. 식당 운영자는 고객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장소인 식당과 그에 부속된 관련 시설을 위험이 없는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로 제공해야 하며 고객의 안전을 배려해야 하는 보호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에 근거한 판결이다.

한편, 식당 운영자가 일정부분 책임을 지게 됐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책임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지는 않았다. 부모가 아이를 혼자 두지 않고 곁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아이의 부모에게도 50%의 과실이 인정됐다. 해당 판례에서 모형자동차를 작동시켰던 남자 어른 D는 소송 당사자가 아니었으므로 D에 대한 판단은 없었으나, 법리상 직접적인 가해행위를 한 D에게도 당연히 책임이 인정될 것으로 사료된다.

이처럼 법은 '내 잘못인지, 당신 잘못인지'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영역에서도 각자의 사정을 개별적으로 쪼개서 각자에게 각자의 과실 만큼 책임을 분담시키도록 정하고 있다. 법은 어느 일방에게 특별히 유리하지도, 특별히 불리하지도 않도록 적용돼야 하고, 과실상계는 대표적으로 이러한 이념을 보여주는 법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몇 대 몇'은 교통사고에만 적용되는 논리가 아니다. 어떤 일들은 내 잘못이기도, 네 잘못이기도 하다. 강재규 법률사무소 진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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