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희 순천향대 컨버전스디자인학과 교수
고은희 순천향대 컨버전스디자인학과 교수

기업을 만든다는 것, 즉 창업을 한다는 의미는 구체적으로는 브랜드(Brand)를 만든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브랜드를 만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브랜드를 만든다는 의미는 내가 하고자 하는 사업의 본질을 정의(What)하고, 그 정의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것(How)을 말한다.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간혹 기업의 브랜드 컨설팅을 위탁받는 경우가 있다. 브랜드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과 함께 로고는 어떻게 제작하는지, 웹사이트는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며, 모델은 누구를 섭외하면 좋을지 등에 대한 컨설팅 요청이다. 이러한 요청은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방법론으로써 가시화 작업에 해당할 뿐이며 그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시키고 싶은 지에 대한 본질을 명확히 정의하는 일이다.

본질(本質)이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의 성질이나 모습, 사물이 그 사물답도록 만드는 성질을 말한다. 정의는 라틴어 완전히를 뜻하는 de- 와 경계·제한을 의미하는 'finire'의 합성어인 'definire'에서 유래했다. 두 뜻을 연결하면 본질 정의란 본래 사물이나 현상의 성질이나 모습의 범위를 규정짓는 것을 말한다.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어디까지로 보느냐, 다시 말해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어디까지로 축소시키고 확장시키느냐의 관점이 곧 하고자 하는 일(개인적 일, 사업, 과제 등)의 원형이 된다.

안경을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안경의 정의는 '시력이 나쁜 눈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하여 혹은 바람, 먼지, 강한 햇빛 따위를 막기 위하여 눈에 쓰는 물건'이다. 시력을 보완하거나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 안경을 제공하는 것을 본질의 범위로 정할 수 있다. 동네에 있는 일반적인 안경 전문점들이 그렇다.

반면에 안경 본질의 범위를 '눈을 통한 경험'으로 정의한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라는 브랜드가 있다. 한국 토종 브랜드로 2011년에 론칭하여 2021년 기준 미국, 영국, 프랑스, UAE, 싱가포르, 중국 등 전 세계 30개국 400여 개 매장으로 확대했고 기업가치가 1조 원에 달하고 있다. 동네에 한 두 개 즈음은 있는 안경점이 어떻게까지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젠틀몬스터는 선글라스에 컬렉션 개념을 도입해서 시즌마다 새로운 제품을 발표하는데 매년 40-50여 종의 신제품을 내놓는다. 매장을 독특한 전시 공간으로 디자인하여 안경에 대한 사람들의 개념을 바꿔놓고, 새로운 세계관을 경험하도록 한다. 젠틀몬스터는 안경의 본질을 시력을 보완하거나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사물이 아니라 인간이 눈을 통해 경험하는 모든 가치로 정의했다. 이러한 정의는 본질을 매장을 포함한 젠틀몬스터라는 브랜드가 주는 사용자의 경험으로까지 물질화 되었고 차별화가 되었으며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렇든 본질을 명확히 정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가치관과 사업의 비전과 방향성이 명확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또한 명확한 사업의 본질이 정의되면 브랜드를 이미지화하는 창작은 본질의 이면으로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플라톤이 이데아론에서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의 이면에는 모든 사물의 원형이 있다. 이것이 아이디어다.' 라고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고은희 순천향대 컨버전스디자인학과 교수

고은희 순천향대 컨버전스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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