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일처리 속도(시간)와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조급함과 압박감에 휩싸여 살고 다른 것에 보조를 맞추는 일이나 기다림을 경시한다. 개인 또는 집단에 따라 각자의 속도와 시간표, 계획이 다를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빨리빨리 문화를 넘어 안타깝게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베스트셀러 '신경끄기의 기술' 저자인 마크 맨슨이 꼭 찍었다.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 등 장점은 사라지고, 유교 문화의 나쁜 점과 극단적 물질주의 등 자본주의의 단점이 극대화한 결과라는 것이다. 딱히 반박하기도 어렵다. OECD 38개 국가 중 1위인 자살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고 미래를 암울하게 보는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에도 별 관심이 없지 않은가?

효율성은 무엇인가? 행정학 사전에서는 '능률적으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정도. 효율성(效率性)이란 효과성과 능률성을 합친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행정의 투입에 대한 산출의 비율인 능률성, 투입과 산출의 비율을 따지지 않고 목표의 성취도만 따진 효과성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정도를 효율성이라 한다. 바꿔 말해 목표달성의 양적(量的) 개념인 능률성과 질적(質的) 개념인 효과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 효율성인 것이다. 그래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각기 다른 집단이 부딪히면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를 생각해 보자. 의대 정원 2000명 이상 확대를 이슈로 최근 불거진 의사들의 대규모 파업이 아직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정부가 정한 병원 복귀 시점이 지난 4일로 끝났음에도 여전히 전공의로 대표되는 의사들의 대규모 병원 복귀는 요원한 실정이다. 의사들과 정부 간 의견 차이가 크고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강대 강 대치가 지속되고 있고 애꿎은 환자들과 그 가족들만 속앓이를 하고 있다. 환자들만이 아니다. 의사도 환자와 함께 힘들고 지치고 있다. 지켜보는 일반 국민이라고 편안하겠는가?

정부는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파업과 진료 거부 등의 집단행동을 하는 전공의들이라고 규정하고 "의사들 불법행동, 오늘부터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한다. '의사불패 깬다', '의사 면허정지는 불가역적' 등이 여러 언론 매체에서 등장하고 있으며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거듭 강조한다. 대화와 타협은 온데간데없고 정부의 겁박과 이를 상대하기 위해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한 의사 파업만 보인다. 양쪽 모두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인정은 보이지 않고 상대편에 대한 프레임만 존재하는 가운데 강대 강 힘 싸움만 하고 있다. 그것도 장기간 말이다. 서로 간에 끝장을 볼 태세다.

의사 파업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의사들도 투쟁하고 있다. 유럽 최대 의사노조인 독일 '마르부르크 분트' 소속 의사들은 연간 12.5%의 임금 인상과 야간·주말·공휴일 근무에 대한 추가수당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도하고 있다. 응급환자 진료는 보장하면서 예정된 검사와 긴급하지 않은 시술만 지연하는 방식으로 하루 경고파업을 택했다. 독일 전역 23개 대학병원 의사들이 참여했는데, 공무원처럼 정해진 월급을 받는 이들은 의사 부족으로 대학병원 근무 환경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의사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노조 측에서 의대생 증원을 선제적으로 요구한다. 우리나라와는 의사들의 상황과 대처 방법이 많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독일에서는 긴급상황에 대한 119 신고(독일에서는 112)가 접수되면 구급차, 경찰 그리고 소방사다리차가 꼭 함께 출동한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소방사다리차가 꼭 출동하지? 실제로 대부분은 사다리차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일처리 속도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 눈으로 보면 낭비라고 여겨지거나 효율성 있게 일 처리를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독일에서는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소방사다리차는 항상 출동한다. 왜일까? 효율성에 앞서 한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요한 경우가 많지 않지만 정작 필요할 때 소방사다리차가 없으면 발생할 수 있는 인명손실에 대한 사전 예방인 것이다. 효율성보다는 인간의 생명이 우선인 사회다.

우리나라에서는 효율성을 강조하는 정부와 의사들의 장기간 대치와 힘겨루기에 공동체의 중요성이 발붙일 틈이 없어 보인다. 잠시라도 물러서면 패배하는 것이라는 조급증과 상대편에 대한 강한 프레임 씌우기로 이익을 추구하려는 세력이 우리 사회와 그들이 그토록 위한다는 우리 국민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는 공동체의 가치회복을 위한 교육과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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