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언제부턴가 저녁 약속을 하는 게 두렵다. 열에 아홉은 술자리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차를 가져왔다는 이유로 술을 고사하면 핀잔을 듣거나 대리비를 낼 터이니 술은 피하지 말라는 억지를 듣기 일쑤다. 요즘 회사마다 회식이 줄고 상당수가 개인 일정을 이유로 공식 모임 자체를 피하는 속내에는 과도한 술자리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할 뿐만 아니라 가족과 행복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이라는 깨달음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반전을 획책하는 몸부림일까, 이젠 주류광고가 줄어든 대신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예능이나 여행 프로그램에서는 식사와 반주(飯酒)가 당연한 조합인 듯 술 마시는 장면이 매번 연출된다. 담배 규제 수준에 비하면 빗장을 죄다 푼 듯하다.

작년 5월, 도로교통공단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심리적 요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2001년과 마찬가지로 2021년에도 "마신 술의 양이 적어서"라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 20여 년간 음주운전을 막아내기 위한 국가·사회적 노력이 기대에 못 미친 원인에는 음주로 인한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개는 맥주 한 잔하고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대리운전을 부르는 이들조차도 기왕에 대리기사를 이용할 거라면 취하도록 마시는 게 본전이라고 생각한다. 술 한잔하고 술값의 5-10배가 넘는 대리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경제활동으로 평가받는 세상이다.

최근 10년간의 노력으로 음주운전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만 9093건(2012년)에서 1만 5059건(2022년)으로 48.1%나 감소했다. 같은 시기에 음주운전 교통사고 발생으로 사망한 사람도 815명에서 214명으로 무려 74%의 감소율을 보였다. 하지만 2022년 기준, 교통사고 사망자 수 대비 음주운전 사망자 수 비율(8.8%)에 있어서는 일본의 그것(4.9%)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게 현실이다. 2023년 5월경에 국내 한 신문사가 음주운전 사상(死傷) 사건 판결문 100건을 분석한 결과,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89건으로 집계됐고 사망사고 최고 형량은 4.5년에 불과했다. 심지어 2022년 12월에 발생한 음주운전 재범 사건에서는 중앙선을 침범해 사망사고를 냈음에도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례도 있었다.

상습적 음주운전이 가장 문제인데, 음주운전 2회 이상 적발 건수는 2022년 이후 증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2001년 형법 개정에 이어 2002년 도로교통법상 혈중알콜농도(BAC) 기준을 강화하고 최대 징역 15년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음주운전이 감소하고 있다. 2022년 일본에서는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6세와 7세 여아를 사망하게 한 61세 피고인에게 징역 14년의 선고가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경우 대부분 집행유예로 처리되고 있다. 국민이 뜻을 모아 입법에 성공하여도 사법부가 이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가해자가 음주운전을 한 경우 자동차보험료가 할증되는데, 평균적으로 캘리포니아는 131%, 뉴욕주는 80%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보험료 인상은 음주운전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효과로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우리의 경우에는 보험료 할증률이 초범일 때 10% 수준이고 재범일 경우에 20% 정도에 불과해 억제 효과가 제한적이다. 술 한 잔과 대리운전 비용에 대하여도 일그러진 합리주의가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음주운전에 따른 면허정지 기간도 크게 늘리고 벌금 역시 획기적으로 올리는 등, 경제적·사회적 기회비용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늘리는 것이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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