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현정 카이스트 교수 겸 미술관장
석현정 카이스트 교수 겸 미술관장

1986년 KAIST 개교와 함께 산업디자인학과가 설치됐고 이공계 영재로 선발된 KAIST 학부 학생 누구나 산업디자인을 전공할 수 있었다. 미술 실기 시험없이 학생을 선발하는 디자인학과라니, 40년 전 관점으로는 매우 파격적이었을 것 같다. 요즘은 내노라 할 예술 대학에서도 실기 시험이 없이 교과 성적만을 반영하는 경우가 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어떤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멋진 스타일을 뽑는 일에 머물러있는 직업이 아닌,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기획하며 미래를 제안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혹독한 예술 교육을 경험하고 난 후 디자인을 전공한 경우와 비교해서 마냥 앞서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동문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은어로, '구라 디자인'을 기억하고 있다. 멋지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신이 없으니, 왕년에 공부 좀 했었던 경험을 살려 '말빨'로 그럴 듯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졸업 직후인 2000년대 초, 나는 국내 모 기업에 취업해 웹사이트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들은 미술 학원에서 10대를 보낸 미술 학도 출신이었기에, 과학고에서 카이스트로 진학한 나는 디자인 실력이 아쉬운 사원으로 분류됐다. 고군분투를 반복하던 중 생존하기 위한 전략으로써 나는 구라 디자인을 발휘했다. 어설퍼 보일지언정 얼마나 참신하고 유익한 컨셉인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팀장의 호감을 잠시 샀으나, 금세 디자인 실력이 들통나서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눈물을 쏙 빼고 난 후에는 유능한 선배 디자이너 어깨 너머로 실무를 배우기 시작했다. 픽셀 단위의 완성도 높은 그래픽 작업은 구라 디자인이 넘을 수 없는 열정의 디테일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말을 잘 하면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려주는 시대가 도래했다. 프롬프트(prompt), 즉 명령어를 잘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림을 끝없이 그려낸다. 교수가 학생에게 이렇게 해보세요, 여기를 수정하세요, 조언을 하듯이 프롬프트를 이어간다. 학생에게는 친절히 잔소리의 명분도 알려줘야 하고, 길게 붙잡고 있어서도 안된다. 반면 인공지능은 늘 상냥하고 성실하게 내 프롬프트에 따라 새로운 작업을 한다. 수려한 말솜씨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인공지능에게 명확한 지시를 전달해야 한다. 이제 어려운 것은 선택이다. 학생 과제물에서 우수작을 가려내듯이, 창작자는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많은 결과 중 하나를 선택하는 안목이 중요하다. 안목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다시, 선배 디자이너를 따라하며 힘겹게 실무를 익히던 시절이 떠오른다. 많이 보고 듣고 만들어보는 몰입의 과정은 창작물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종종 인공지능이 예술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우려의 기사를 접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인물과 풍경을 똑같이 그리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화가에게 19세기 중반 카메라의 발명이 얼마나 위협적이었겠는가. 그러나 카메라의 등장으로 예술의 영역이 확장되고 카메라를 도구로 이용하는 새로운 분야도 생겨났다. 카메라가 포착하지 못하는 빛의 감성을 담고자 하는 인상주의가 시도됐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추상화가 탄생했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새로운 기술을 탐닉했고 문화가 창조됐다. 인공지능 기술을 마주하는 현대의 창작자도 마찬가지다. 손발이 돼 줄 조수를 필요로 하던 모든 창작자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대환영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창작의 가치는 생각의 전환과 안목이라고 생각한다. 머지않아 "OOO님의 안목을 예측한 최적의 결과물을 생성했습니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창작자의 생계가 위협받을까? 아니다. 이 또한 새로운 창작의 영역이고, 더 많은 작업이 가능하기에 경제적으로도 더 많은 기회가 기대된다. 실습 훈련을 혹독히 받은 디자이너에게도, 구라 디자이너에게도. 석현정 카이스트 교수 겸 미술관장

석현정 카이스트 교수 겸 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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