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미 한남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마정미 한남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최근 한 모임에서 연애예능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몰랐을 터인데, 의식하고 보니 TV 채널과 OTT 플랫폼 등에 연예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꽤나 많다. 타인의 연애가 예능프로그램이 되다니, 트루먼쇼인가 허탈한 웃음도 나오지만 '나는 솔로' '하트 시그널'을 포함해 넷플릭스의 '솔로지옥', 티빙의 '환승연애' 등 다양한 연애프로그램이 MZ세대뿐 아니라 청소년들과 중년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처음에는 결혼적령기의 젊은 청춘남녀 위주였던 일반인 출연자의 범위도 다양해졌다. 헤어진 과거의 연인이 나오기도 하고, 10대나 돌싱, 동창 등 출연 대상의 폭이 넓어져 '연애남매', '솔로동창회 학연', '커플팰리스' 등 다양한 포맷과 그만큼 각양각색의 관계와 삶을 다룬다. 저마다 다양한 사연과 상황을 가진 일반인들이 출연하면서 연애 예능은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연애를 보여주게 됐다.

저출산 노령화가 심각한 한국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결혼연령이 점점 늦어지고 비혼주의자가 늘어나는 우리 현실에서 연애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연애 예능들이 인기있는 이유는 과거처럼 짝짓기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 아니라 '사람'과 '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특정장소에 고립돼 공동생활을 하게 되는 이들의 도처에 포진있는 카메라 앞에서도 날 것 같은 감정의 결과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들과 갈등이 흥미롭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이 드라마나 시트콤처럼 펼쳐지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열광하는 것이다.

각 프로그램은 나름의 매력이 있고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필살기가 있다. 출연자의 독특한 이력과 직업, 빼어난 외모와 피지컬의 매력, 파격적인 콘셉트와 노출까지 매우 다양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초반의 관심과 화제성에 기여할 뿐, 가장 중요한 것은 실시간으로 드러나는 출연자들의 요동치는 감정의 변화와 진심이 담긴 말과 행동이다. 출연자들의 성격과 특성, 트라우마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동일시와 객관화가 동시에 일어난다. 사랑과 감정에 흔들리는 출연자의 모습을 보며 자신과의 동일시를 일으키는가 하면 출연자들을 통해 스스로는 인식할 수 없는 자기객관화와 타인에 대한 이해도 확장된다. 연애 프로그램이 스스로를 객관화해 볼 수 있는 거울이자 인간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창이 되는 것이다.

사실 연애예능의 인기는 어쩌면 대리만족이 더 강할 수도 있다. 연애를 꿈꾸지만 연애가 어려운 세대, 연애하고 있지 않거나 연애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연애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다.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결혼과 출산, 육아가 부담스러워 연애부터 미래 가능성까지 미리 포기한 N포 세대(N 가지를 포기한 세대)의 억눌린 욕망을 보여주는 듯해서 서글프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들은 때로 시청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가져오기도 한다. 일반임임에도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출연진들의 외모와 직업, 스펙이 매우 화려하기 때문이다. 솔로지옥은 무인도가 설정배경인지라 비키니와 상반신 노출이 빈번하고, 몸을 잘 만든 출연자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전문직 종사자와 화려한 학력, 이력의 소유자, 연예인 뺨치는 외모와 몸을 가진 출연자들은 드라마처럼 판타스틱한 가상의 러브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들과 괴리되고 출연자들은 이미 셀럽이 돼버린다.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허상 같기도 하고 리얼리티임은 분명하지만 이미지와 환상 같기도 하다. 때문에 보통은 출연이후 셀럽이 되기도 하지만 이를 목적으로 출연하는 듯한 느낌도 있다.

연애 예능 프로그램은 더 이상 트렌드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다.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가성비 높은 기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미디어는 의도치 않게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에 변화를 주고, 나아가 다시 사회적 가치관의 형성에도 기여한다. 마정미 한남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마정미 한남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