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서구화와 근대화를 표방한 갑오개혁 이듬해인 1895년 고종은 "교육이야말로 국가보존의 근본인 바, 널리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여 국민의 학식으로써 국가중흥의 대공(大功)을 세우고자 한다"는 교육조서를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종래의 경전 중심 교육을 벗어나 학교라는 공간을 새로이 만들고 학식 배양을 통해 격동하는 세상에서 국가를 지키려 했다. 이후 230년이 되어가는 요즘, 세계 언론에 비친 대한민국은 가히 세계를 선도하는 인재를 자랑한다. 최근 미국 국제전자제품박람회인 CES 2024에서 혁신상 379개 중 160여 개를 한국기업이 휩쓸었다. 우리의 인재들이 미국에서 한국 잔치를 벌인 것이다.

최근 학교가 급격히 병들어 가고 있다. 장사꾼 밑천이자 종갓집 씨간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가 폭력으로 위협 받고 있다. 지난 12월 발표된 2023년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피해응답률)은 초등학생 3.9%로 가장 많고, 증가율은 전년 대비 0.4% 증가한 1.3%의 중학생이었다. 2013년 조사 이래 가장 비중이 낮았던 2020년 이후, 매년 1%대의 증가율을 보이다가 작년에는 가장 큰 1.9%의 증가율을 보였다. 그 추세가 매섭다.

일단 국가가 칼을 빼들었다. 올해부터 사이버 폭력을 포함한 각종 폭력으로 위기에 처한 초·중·고교와 특수학교를 구하려는 특단의 조치가 시행된다. 3월 신학기부터 교육청 소속으로 '학교폭력전담조사관'이 근무하게 된 것이다. 학교폭력 업무나 생활지도, 수사·조사 경력 등이 있는 2700명의 퇴직 경찰관 또는 퇴직 교원들이 채용될 것이다. 교원들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을 대신해 학교폭력 대응 업무를 도맡게 된다. 이미 작년 10월, 정치권이 2004년 제정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개정한 결과다. 학교 현장이 학교폭력 처리 업무에 대한 과중한 부담에서 벗어나 교원들이 당사자 학생에 대한 관계 개선과 지원 등 교육적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대책의 핵심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위원에 학교전담경찰관(SPO)의 비중을 늘리고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피해학생의 진술권 보장이나 분리 요청권 부여 등 사실관계 확정과 형사사법적 전문성을 높이는 길이다. 그런데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청과 교육지원청 등의 이해와 노력이 여기에 맞장구치지 못하고 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참가하는 경찰위원을 소수 배정해 SPO의 참여비중이 감소하는 등 경찰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 위원회의 전문성 약화가 불 보듯 뻔하다. 충분한 SPO의 충원은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의 활동에도 기능적으로 호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반드시 요구된다.

당장에 SPO가 위원으로 위촉된 비율을 보면, 울산교육청이 SPO 21명 중 20명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위촉(95%)한 데 비해, 대전교육청은 29명의 SPO 중 13명(45%)에 그치고 있다. 대전은 전국 평균(65%)에도 미달하고 세종(86%)에도 한참 못 미친다. SPO는 학교폭력을 전담하는 경찰관으로 2012년 도입된 이래 전문적 교육·훈련 과정을 거쳤고 특히 조사에 있어서 인권 의식이 투철하고 학교폭력 당사자와 선입견이나 이해관계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미래세대는 다른 곳이 아닌 학교에 있음에 절실해야 한다. 학교폭력 없는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데에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사회공동체 가운데 학교는 건강한 마음을 가진 학생들이 균형 잡힌 시민으로 성장하고 자신의 탁월함을 만들어 가는 데 필수요소다. 관련 부처 간 이견이나 기득권 때문에 대의를 저버리고 백년대계를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마음의 빗장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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