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은 개인과 조직의 방향성을 제공
대부분의 조직이 구호뿐인 비전 설정
조직 구성원의 가슴을 뛰게 만들어야

남상우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
남상우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연설 중 일부다. 킹 목사의 연설에서 이 문구만 기억해서인지, 매번 이것만 인용된다. 아니다. 그의 연설에서 중요한 건 다음 문구다. "언젠가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과 노예 주인의 후손이 형제애라는 식탁 앞에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이 문구가 중요한 건 노예 해방의 '비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만약 킹 목사가 '노예 해방이 되리란 꿈입니다'라고 말했다면? 그의 연설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비전은 미래의 이상적 모습을 그려주고, 더 중요하게는 구성원의 가슴을 뛰게 한다.

2023년 9월 중순, 프로야구 LG트윈스 주장 오지환 선수에게 기자가 요청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는 마지막 순간을 그려주세요.' 오지환 선수 왈. "관중석 팬들은 전부 유광점퍼를 입었을 겁니다. 모두 울고 계실 거고요. 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 죄송합니다. 우리가 챔피언입니다. 이제 앞으로 나오셔도 됩니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11월 13일, LG트윈스는 비전을 실현했다. 중요한 건 우승보다 그가 말했던 비전이었다. 야구에 큰 관심 없던 나까지 가슴을 설레게 했으니까.

"1960년대 말까지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킨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3년 의회 연설에서 한 말이다. 이 말에 담긴 대담하고 도전적인 목표가 많은 미국인의 가슴을 뛰게 했다. 대담한 목표는 성공한 기업의 공통적 특징이다. '모든 가정집의 책상 위에 컴퓨터를(마이크로소프트).' '인류의 혈액 속에 코카콜라가 흐르게(코카콜라).' '모든 서민에게 명품 구입의 기회를(월마트).' 대담한 목표는 조직 구성원의 일상 업무에 스며든다. 케네디 대통령의 비전 선포 이후 나사(NASA)에서 일하던 관리노동자는 말한다. "나는 바닥 청소를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조직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비전은 필요하다. 일상 행위의 지향점이 되고 그 행위를 즐겁게 지속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궁금할 수 있다. 비전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너는 비전을 갖고 있나? 소박하지만 나에게도 비전이 있다. 스포츠코칭 수업 때 그 비전을 아이들과 공유한다. "2045년 정년퇴임 때, 우리나라 스포츠계에서 영향력 있는 서적 여덟 권과 그 책으로 지적 전통을 이어갈 여덟 명의 제자가 함께 스포츠사회학 연구실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 이야기를 한다." 내가 완성할 미래 특정 시점의 이상적 그림이다. 이 비전 덕에 나는 아침마다 가슴 설레며 연구실 문을 연다.

비전은 매력적인 미래의 그림이다. 매력적이니 가슴이 설렐 수밖에 없다. '우리 조직은 최고가 된다.' 가슴이 설레는가? 그다지. 또한, 구체적이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이 함께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살짝 겁먹을 정도로 도전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열정이 발휘되니까. 물론 혹자는 반박할지도 모른다. 비전은 조직의 '품질 보증서'가 아니라고. 맞다. 많은 비전이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비전이 없는 건 '실패 보증서'를 지니는 것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조직에 속하든, 거기에는 비전이 함께해야 한다. 당장 여러분 개인의, 여러분 조직의 비전을 점검하라. 가슴이 뛰는지, 그림이 그려지는지.

그렇다면 이 비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사진기를 들고 원하는 미래의 특정 시점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보자. 그곳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사진으로 찍은 후, 돌아와 그 사진을 문장으로 만들자. 가슴 뛰게 할 비전은 그렇게 탄생한다. 중요한 건 타임머신을 CEO 혼자 타면 안 된다는 점이다. 조직원 모두가 함께 타야 한다. 비전은 CEO 서랍 속의 서류가 아닌, 구성원의 가슴 속에 그림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상우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

남상우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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