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며칠 전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었다. 수험생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수능일은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그 어떤 날보다 중요한 날이다. 나라 전체가 그날은 수능이라는 시험을 위해 배려하는 날이다. 직장인의 출근 시간 조정에서부터 행여 듣기평가를 방해할 수 있다며 특정 시간대 비행기의 이착륙도 피하는 날이다. 우스갯소리로 수능일은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모두가 이토록 집착하게 된 수능이라는 대학 입학시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일단 수능시험의 현실과 이상은 큰 격차가 있으며 아무리 좋은 이론을 가진 정책일지라도 실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가장 좋은 본보기 중 하나다. 우리가 경험한 대학 입학시험도 다양하다. 예비고사, 본고사, 학력고사, 수능시험 등 다양한 시험이 있다는 말은 그 어떤 시험의 형태도 완벽한 우위를 가진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가 차원의 시험이 가질 가장 중요한 전제는 '공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수능이 공정하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사는 곳에 따라 혹은 사교육의 여부 더 나아가 가구의 소득이나 심지어 부모의 직업에 따라 시험에 유불리가 갈린다. 같은 출발선이라는 것은 아예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공정성에 대한 시비는 시험 자체의 존폐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크고 민감한 사안이다. 공정성을 강화하다 보면 그 결과로 시험이 쉬워질 수 있다. 그럼 쉬운 시험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수능시험이 해줘야 할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등수를 구분해 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변별력'이라는 개념이 시험의 중요한 전제로 등장한다. 변별력을 강조하면 시험은 필히 어려워진다. 이 둘 사이 균형을 잡는 완벽한 줄타기는 없다. 쏠림에 가깝게 특정 학교나 학과에 선호 현상이 있고, 이런 결과로 학과나 학교의 서열이 굳어져 있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이다. 변별력에 무게추가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수능시험을 생각하면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격언을 실감한다. 그러고 보니 수능이 우리 국민에게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 것 같다.

수능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잘 반영한다. 우리가 여전히 학벌사회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뜻이며, 지난 우리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학생을 평가하는 방법은 큰 변화가 없이 오직 학습 능력에만 치우쳐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대다수 학생이 한번은 수험생이라는 현실에서 수능은 대학 진학을 위한 관문이며 성인으로 가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하지만 그 내용과 형식이 냉혹하고 매정하다. 세상의 쓴맛을 미리 알려주는 것일지 모르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수능을 생각하며 먼저 든 서정은 애잔함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학습량과 학습 시간의 종착점은 결국 수능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학생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는 무거운 책가방과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공부하는 청소년이다. 수년 동안의 결과가 단 하루에 집중되는 도박 같은 제도에 내몰리는 십 대를 누가 가련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부모의 심정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이런 시험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대물림해야 하는 이 땅 어른들의 안타까움도 무시할 수 없다.

다행히 올해 수능시험도 큰 문제 없이 끝났다고 한다. 이제는 수능시험에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야 한다. 놀랄 정도로 다양한 재능과 자질을 묻어두고 규격에 맞춘 생활을 견뎌낸 수험생들, 그리고 달리는 말에게 하기 싫은 채찍질을 해야 했던 이 땅의 모든 선생님과 한동안 엄마나 아빠가 아니고 학부모라 불리었던 따뜻한 마음의 어른들, 어떤 형태로든 양보와 응원을 보내준 이 땅의 모든 이들, 그리고 시험장에 오지 않은, 생각만 해도 울컥한 수험생들에게도 말이다. 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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