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연 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박수연 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축제가 2007년 11월 8일부터 전주에서 진행되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문학을 주체적 시선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주제였다. 한국에서는 백낙청, 현기영, 황석영, 황지우 등이 참여했고 해외에서 마흐무드 다르위시 등 수많은 문인들이 참여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참여해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 문학축제는 서구적 시선으로 선정되는 노벨상과 같은 것은 큰 의미가 없는 행사였다. 중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도 참석하여 여러 발언을 했지만,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그의 의견은 동의 받지 못했다. 문학이 보듬어야 할 세계사의 상처를 그는 강대국의 시선으로 처리해 버렸기 때문이다. 요컨대 강자의 시혜적 시선으로 상처를 다루는 것은 문학과는 관계없다고 아시아 아프리카의 작가들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이 세계문학의 주제를 놓고 인천문학관에서 여러 해 개최되었고, 평창동계올림픽 때는 세계문학대회로 확대되었으며 그 후 해마다 제주, 부산 등지에서 관련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해마다 대전에서도 한국의 문학연구자들과 해외학자들이 세계문학 포럼을 진행하는 중이다. 대전문화재단의 지원 프로그램인데, 홍보 부족 때문이겠지만, 대전의 문인들은 거의 관심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이 행사들의 공통적 주제는 서구 중심적 시선을 넘어선 세계문학의 가능성이다. 이 말은 서구문학을 배제하자는 뜻이 아니다. 서구문학은 서구인들의 문학이고 아시아의 문학은 아시아인들의 문학이어야 한다는 것, 요컨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문학도 서구문학과 동등하게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주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 중심적 시선으로 위계화되어 있는 세계문학을 각각의 자리에서 동등한 별자리들의 세계문학으로 바라볼 때 진정으로 서구의 문학도 이해될 수 있다는 의미가 여기에는 있다.

대전에서 세계문학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문제 설정을 좀 더 넓혀 볼 필요가 있다. 대전은 세계문학 대회를 해마다, 혹은 최소한 2년마다 한 번씩 개최할 수 있을까?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문인들이 모여 읽고 토론하고 쓸 수밖에 없다. 세계문학의 무엇을 읽고 토론하고 쓸 것인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제임스 조이스와 예이츠? 루쉰? 이들은 당연히 독서 대상이지만,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제임스 조이스와 예이츠가 식민지 아일랜드에 대해 품었던 생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구적 시선이 알려주는 것만 알고 있는 따라쟁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루쉰이 그의 본부인을 평생 어떻게 외면했는지, 왜 소말리아의 해적선은 선진국들이 불법적으로 오염시킨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굶주려야 했던 어부들의 최후 생존권이었는지, 그 소말리아 해적들을 형상화한 작가가 한국에 들어와 강연하는 것을 왜 어려워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문학이 지금 아름다운 언어에 기뻐한다는 사실은 반대로 그 즐거움 이면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심각한 무지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때 문학은 진정한 삶의 편이 아니라 삶을 억압하는 힘의 편이라는 사실을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모든 문학의 언어는 성찰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세계문학은 그냥 세계문인들이 모여 우아하게 인사하고 축배를 드는 자기 자랑 대회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그것은 문학의 언어가 주제로 삼을 인류애의 자기화와 실천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마침 대전과 충청지역에서 몇 년 후 세계적 스포츠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지금 그를 통해 대전의 문학예술이 세계인들과 호흡할 수 있는 자기 역량을 길러내지 않는다면 대전은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다른 사람들의 잔치로 넘겨주고 말 것이다. 문제는 이를 준비할 역량이 지금 대전에 있는가이다. 대전이 세계문학의 별자리로 존재할 수도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박수연 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박수연 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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