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단죄 못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
3·1절에 일장기 휘날리는 모습 국민 공분
한일정상회담 한은 부정, 일은 긍정 우세

박계교 충남취재본부장
박계교 디지털뉴스 2팀장

"자아, 술을 듭시다. 이제 조선의 해는 없어졌소. 그러니 조선에는 아침도 없소. 앞으로는 일본의 해가 조선땅을 비춰줄 것이오. '백상'도 일본제국의 충신이 되기를 맹세하시오." 하시모토가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조정래의 장편대하소설인 12권짜리 '아리랑' 중 2권 '해가 진 나라'에 나오는 대목이다. 배경은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이 공포되면서 사회 곳곳에서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간 대한제국의 혼란을 담고 있다. 이후, 누군가는 나라를 찾기 위해 항일의 가시밭길을 선택해야 했고, 누군가는 부역자로 기생하는 친일의 역사가 36년 간 이어졌다. 못난 지도자를 만나 나라 잃은 민족은 일제의 '내선일체' 허울에 피 말리는 핍박의 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맞이한 광복.

그러나 1945년 광복의 기쁨도 잠시, 미군정이 들어선 뒤 엘리트 집단이었던 친일파는 이들의 부역자로 말을 갈아타면서 또 다시 득세를 하게 된다. 1948년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차원에서 친일파를 단죄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친일파를 필요로 한 미군정과 친일파들의 거센 저항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1949년 8월 22일 반민특위 폐지안이 국회를 통과되면서 통한의 간판을 내렸다. 두고두고 한스러운 장면이다.

그렇게 친일파들은 우리 사회의 배부른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반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처럼 항일애국지사들이나 배우지 못한 후손들은 우리 사회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배고픈 비주류로 살아가고 있다. 청산하지 못한 일그러진 우리 역사의 단면이다

3·1절날 보고도 믿기지 않아 헛웃음만 나오게 만든 사진 한 장. 세종시 한 아파트에 난데없이 걸린 일장기가 공분을 사면서 분노지수를 높였다. 여기에 세종소녀상을 사이에 두고 철거를 주장하는 측과 보호조치를 바라는 측의 집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나 세종소녀상 철거를 바라는 집회에서 3·1절에 일장기를 내걸었던 일명 일장기남이 이 집회에 참석, 일장기를 휘날리는 걸 보니 가관이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한일정상회담이 있었다. 평가는 엇갈린다. 아직까지 국내 반일 감정이 득세한 마당에 이것저것 다 차치하고 사과 한 마디 못 듣고온 윤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의 시선이 고을 리 없다. 여기에 대통령실은 극구 부인을 하고 있지만 독도와 위안부 문제까지 논의 됐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쏟아지는 걸 보고 있자니 상한 국민 감정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공영방송 NHK의 보도를 인용하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과거 양국 간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한국 측에게 요구했다, 독도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의 입장을 전했다"고 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일본 언론이 비슷한 내용을 실었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가 제로섬이 아니라고 했지만 양국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이미 한쪽으로 기운 듯 하다. 현재까지 우리 국민은 대체로 부정적, 일본 국민은 긍정적 여론으로 대비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를 목이 터져라 세 번 외친 그는 그렇게 러시아군에 붙잡혔다. 거사 후 담담하게 끌려가는 영상이 오히려 당당하게 다가왔다. 이토는 현장에서 30여 분 만에 사망했다. 뤼순형무소로 옮겨진 안 의사는 이듬해 2월 14일 일본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안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는 수의(壽衣)를 보내면서 이런 편지를 썼다. "만약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이승에서는 볼 수 없으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죽으라는 어머니의 단호함이 편지에 담겼다. 안 의사는 어머니의 말대로 항소를 포기했고, 이런 말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오'. 그의 나이 32살 때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가 떠오르는 때다.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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