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균 충남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
고대균 충남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에 관한 논의가 국내에서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1월 3일, 환경부의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 중 제품의 사용주기 연장을 위해 수리권 보장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수리할 권리는 미국이나 EU 등에서 이미 그 논의가 활발하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제조업체가 소비자의 수리할 권리를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EU 집행위원회는 2020년, 소비자의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한 신순환경제실행계획을 발표했다.

수리할 권리에 관한 다양한 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 중 하나는 소비자가 수리서비스에 관해 제조사가 지정한 서비스 외의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때의 다른 방식에는 소비자가 별도로 부품을 구매해 자체적으로 수리하는 것을 허용하는지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다.

소비자의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소비자에게만 이로운 일이 아니라 기업 간의 공정한 경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제조사 이외에 다양한 수리서비스의 대안이 시장 내에 경쟁할 수 있도록 하고, 소비자는 충분한 양의 정보를 통해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전체 시장경제에서의 유효한 경쟁을 확보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해외와 달리 수리할 권리의 도입이 불필요하다는 업체의 주장도 있다. 지역별로 소비자의 제조사 서비스센터에 대한 접근성이 이미 우수하고, 소비자가 자체적으로 수리할 때의 위험을 통제하거나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근거이다.

그러나 기업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더는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과 궤를 같이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을 필두로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응하는 방안에 관한 논의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추진해야만 하는 사회적 의제이다. 소비자의 수리할 권리는 단지 소비자가 스스로 수리할 수 있도록 기업이 그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서서 기업이 제품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수리의 용이성을 고려하고 관련 부품이나 정보를 소비자에게 구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등 그 논의가 여전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고대균 충남대 소비자학과 교수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