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사람을 생물학적으로 분류한다면 지구상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한 포유류 동물로 호모사피엔스라고 부른다. 이렇듯 생물학적으로는 사람도 포유류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우리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다르게 삶의 터전인 지구를 망가뜨리며 같은 종족끼리도 경쟁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이 생존을 선택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생존이 아닌 사람의 본성 자체가 그런 것이라면 존재자체가 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

정말 우리 인간은 그런 존재인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근원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아 사람다움의 삶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정체성을 사전적 의미로 보면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고 말한다. 즉, 어떤 존재의 본래적 성질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정체성이라는 것. 그러므로 어떤 존재가 정체성이 있다는 것은 그 존재의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이는 사람은 사회적 관계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으로 사람에게서 사회적 관계를 빼면 동물이나 다르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반면에 사르트르는 사람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라고 했다. 사람 개개인은 그가 원하는 존재와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을 신의 피조물로 신의 모습을 닮은 최고의 걸작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다윈은 유기생명체의 진화의 결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철학자도, 신학자도 아니다. 결코 사람을 분석하려는 것도, 본질을 규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의 본래 모습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냐는 질문을 던져보려는 것이다.

구약성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하셨다"고 증언한다. 사람은 신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최고의 걸작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이 많든 적든, 부자든 아니든 그 자체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을 지어주셨다고 한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불문하고 모든 생명에는 하나님의 생기가 깃든 소중한 생명인 것이다. 이렇듯 모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로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존재인 것이다.

신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했다. 이는 인간이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하는 관계성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자들도 인간의 본질을 사회적 관계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혼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정작 네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나고, 우리가 사는 사회인 것이다. 때론 너와 나의 관계 때문에 지치기도 하고, 혼자 조용히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만 정작 네가 없이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 다른 나'와 관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존재 자체가 복 받은 존재이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그들을 사람이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 자체가 축복이요, 또 다른 나인 이웃도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존엄한 존재이며 서로 소통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본래의 모습은 아닐까? 모든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잘 지키며 살아가길 기도한다. 샬롬.

 

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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