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위해 목숨 받친 수많은 영웅들
내부 남남갈등으로 국론 분열 고조
영웅들의 나라 위한 희생 되새길 때

박계교 충남취재본부장
박계교 충남취재본부장

1909년 10월 26일 오전 10시경 하얼빈역. 누군가를 기다리는 많은 인파 속 유유히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 이내 열차 문이 열리고 인파의 환영을 받으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렸다. 그리고 잠시 뒤 이들을 향해 7발의 총성이 울렸다. 3발을 맞은 한 남자가 쓰러졌고, 그를 바라보며 총을 쏜 남자는 이렇게 외쳤다.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처음부터 퇴로를 생각하지 않고, '코레아 우라'를 목이 터져라 세 번 외친 그는 그렇게 러시아군에 붙잡혔다. 거사 후 담담하게 끌려가는 영상이 오히려 당당하게 다가온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모습이다. 안 의사의 총을 맞은 이토는 불과 30여 분만에 사망했다. 뤼순형무소로 옮겨진 안 의사는 이듬해 2월 14일 일본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안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는 수의(壽衣)를 보내면서 이런 편지를 썼다. "만약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이승에서는 볼 수 없으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죽으라는 어머니의 단호함이 편지에 담겼다. 안 의사는 어머니의 말대로 항소를 포기, 3월 26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나이 32살이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영웅'은 안 의사의 이토 저격 준비부터 순국까지 1년의 시간을 담고 있다. 뮤지컬 형식으로 웅장함이 더해진 '영웅'은 못난 지도자를 만나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이 땅의 청년들 저항이 눈물겹다. 타국을 전전하면서 일 제국주의에 맞선 이들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은 온전했을까. 물론 1910년 경술국치를 맞기는 했으나 조국을 위한 이들의 희생은 광복 전까지 계속됐다.

군인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면서 떠오른 인물이 김좌진 장군이다. 안락을 포기한 김좌진 장군도 그 청년들 중 하나다. 188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평생 배고픔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3살 때 돌아가시고 편모슬하에 성장했으나 갈산지역 부호로 어린 시절은 부유했다. 한해 거둬들이는 곡식이 3000석에 달하고, 마을 노복(奴僕)만 50여 호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김좌진 장군은 조국을 위해 안락보다는 고난의 길을 택했다. 억강부약(강한 것을 누르고 약한 것을 돕는다)을 마음에 새긴 그는 1905년 자신 소유의 노비 30여 명을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노비 문서를 불태웠다. 이들에게 무상으로 논밭을 나눠 준 뒤 상경,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다. 조국을 위해 군인의 삶을 택한 것.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면서 고향으로 내려와 자신 소유의 99칸 기와집에 호명학교를 세워 근대교육에 앞장서고, 1911년 무관학교 설립을 위한 군자금을 모으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2년 6개월의 옥살이도 했다. 1917년 만주로 건너간 그는 1918년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서인 대한독립선언서(일명 무오독립선언서) 39명에 이름을 올렸다. 1919년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이자 사관연성소 소장이었던 김좌진 장군은 1920년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청산리대첩의 대승을 이끌게 된다. 1922년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에 됐다. 비록 1930년 1월 24일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 산시진 신흥촌 금성정미소에서 고려공산당 청년회원인 박상실이 쏜 흉탄에 순국했지만 조국이 기억해야 할 '영웅' 김좌진 장군이다. 며칠 전이 김좌진 장군이 순국한 지 93주년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눈이 갔다.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와 한국리서치가 24일 발표한 '2022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에서 갈등이 늘었다'고 답한 응답자 비중은 57.8%로 절반을 넘겼다. 10명 중 9명은 '집단 갈등이 심각하다(91.1%)'고 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10명 중 4명은 정치성향이 다르면 밥도 먹기 싫단다.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수많은 안중근과 김좌진은 무엇을 위해 싸웠나. 아!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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