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새해가 되면 우리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으로 새해 인사를 나눈다. 이렇게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은 어쩌면 올 한 해가 행복한 1년이 되길 소망하는 우리의 희망 언어일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우리나라 헌법 10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며 행복추구권을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상태가 행복한 삶일까?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성공하면 행복할까? 부자가 되면 행복할까? 건강하면 행복할까? 권력·명예를 가지면 행복할까? 얼핏 보기에는 행복의 조건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런 것들은 행복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도리어 영국 속담에는 '하루가 행복하려면 이발을 해라.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라. 한 해를 행복하려면 새 집을 지어라. 그러나 평생을 행복하려면 정직해라'라며 소유나 쾌락, 성공이 아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한 5가지 조건을 다음과 말했다. ①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 한 재산 ②모든 사람들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③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④남과 겨루어 한 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⑤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말대로라면 행복의 조건은 아주 단순하다. 조금 부족한 상태, 약간의 결핍이 있는 상태가 도리어 행복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어느 누구도 이런 상태를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할 것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행복'에서는 행복은 자족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러시아의 황제가 중병에 걸렸는데 백성들 중에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속옷을 입으면 병이 치료된다는 현자의 이야기를 듣고 신하들을 시켜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가져오게 했지만 겉으로 볼 때 행복할 것 같은 부자나 권력이 많은 사람이나 훌륭하다고 존경받는 사람이나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행복한 사람을 찾지 못한 신하가 실망하여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리 밑에서 들려오는 "행복하다"라는 말을 듣고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니 웬 거지가 다리 밑에 거적을 깔고 누워서 크게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보아도 행복할 것 같지 않은 환경인데 행복하다고 하니 믿기지 않았다. 재차 그 거지를 향해 정말 행복하냐고 물으니 거기가 말하길 마침 오늘 구걸하는 길에 잔칫집을 만나 배 골지 않고 배불리 먹었고, 이렇게 두 다리 쭉 펴고 누울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이것이 행복이 아닙니까? 그래서 신하는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속옷을 왕을 위해 벗어 줄 것을 부탁하니 거지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미안하지만 나는 속옷을 입지 않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거지가 말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어쩌면 행복은 돈이나 명예, 권력, 성공 등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족을 아는 삶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는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라며 행복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가 아니라 내 마음상태가 어떠냐가 행복을 판가름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현대인의 삶은 냉장고의 크기만큼 바쁘게 산다는 말이 있다. 그저 다 먹지도 못하고 버려지는 것으로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산다면 얼마나 불행한 삶인가? 욕심을 줄이면 당연히 냉장고의 크기도 줄어들 것이고 그만큼 행복의 크기는 늘어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개인뿐만 공동체가 행복해야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나 혼자 행복한 것은 참 행복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 속에서의 좋은 삶이 행복이라고 말했다. 공동체가 함께 행복하려면 우리의 시선이 이웃을 향해야 한다. 우리의 이웃을 남이 아닌 나의 또 다른 영혼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그 공동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올 한 해 우리 모두 참 행복을 누리길 소망해 봅니다. 샬롬.
 

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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