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찰병원 분원 아산시 선정 환영
윤 대통령 공약, 공모로 도민들 우롱
김 도지사, 충남공약 공모전환 안 돼

박계교 충남취재본부장
박계교 충남취재본부장

이러려고 그랬나. 아무리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라지만 무시당하는 기분은 텁텁하다. 뭐 하나 시원한 맛이 없다. 지난 정부도 그렇지만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충남도민의 한 사람으로 화가 치밀지만 '해주고도 욕먹는다'는 말 정도로 해둔다.

지난 14일 국립경찰병원 분원 충남 아산시 선정 결과가 발표 됐다. 환영할 일이다. 김태흠 충남도지사와 박경귀 아산시장 등을 중심으로 노심초사했을 도민들에게는 경사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550병상 규모에 2500억 원 정도가 투입될 계획이라니 경찰뿐만 아니라 도민들에게 의료서비스 혜택이 기대된다.

문제는 국립경찰병원 분원 선정 과정이다. 국립경찰병원 아산분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충남 공약사항이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이 사업을 충남지역 정책과제로 확정됐다. 근데, 도민들의 바람은 아랑곳없이 경찰청은 공모사업으로 전환했다. 전국에서 19개 지자체가 국립경찰병원 분원 유치에 뛰어들었다. 너도나도 정부에 줄을 대기 시작했다. 정부에 애걸복걸 했을 모습들은 안 봐도 짐작이 갔다. 특히나 표가 걸린 정치인들로 보면 치적을 쌓기에 이만한 게 없다. 국비 확보란 타이틀은 유권자들에게 써먹기 좋은 그림이다.

충남으로 보면 '눈 뜨고 코 베인'격이다. 있는 것도 못 찾아 먹는 판이니 속 쓰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김태흠 지사는 지난달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서한문을 보내 "대통령 공약사항을 공모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약속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래도 변한 것은 없었다. 경찰병원분원부지평가위원회는 19개 지자체의 현장실사 등을 거쳐 지난달 최종적으로 충남 아산시와 대구 달성군, 경남 창원시 등 3곳을 추렸다. 발표 전까지 윤석열 정부 실세 장관 등이 거론되면서 충남 아산 유치에 회의적 분위기도 돌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공약을 지킨 셈이 됐다. 개운치 않은 뒷맛이다. 정부가 도민들을 우롱한 것밖에 안 된다. 결과물을 얻기까지 소모적 사회경비가 많이 든 것은 둘째 치고다.

어느 노랫말처럼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다. 김태흠 지사는 지난 19일 제25차 실국원장회의에서 이 문제를 꺼냈다. 윤석열 정부 충남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말이다. 대통령 공약은 공약대로 진행해야지 국립경찰병원 분원처럼 공모사업으로 추진하면 안 된다는 것.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를 살펴보니 육군사관학교 논산 이전, 국립치의학연구원 조성, 충남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 충남공항 등이 눈에 띈다. 녹록치 않은 사업들이다. 육군사관학교 논산 이전은 국방부와 육사 동문 등이 대놓고 반대를 하고 있고, 국립치의학연구원 조성도 타 광역자치단체에서 이미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2020년 10월 지정된 충남혁신도시는 2년이 넘도록 공공기관을 이전한 곳이 한 곳도 없다. 그나마 충남공항은 예타가 진행, 발표를 앞둔 게 위안이라면 위안거리다. 그렇다고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올해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수십조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는 가덕도 신공항은 예타를 면제한 정부가 500억 원 안팎이 들어가는 충남공항은 왜 이리 꼼꼼하게 보는 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김 지사는 "남은 대통령 공약 과제는 이미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공모로 진행하면 안 된다"며 "윤 대통령께 이 부분을 강력 건의하겠지만 각 실국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적극 대응해 줄 것"을 지시했다. 김 지사의 우려처럼 윤 대통령의 공약사항이 또 다시 공모로 전환되지 않으란 법이 없다. 충남은 언제까지 정부와 엇갈린 '썸'을 타야 하나. 신세가 딱하게 보이는 건 나만 느끼는 걸까. 답답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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