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익수 사도 요한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방익수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우리는 아무리 울지 않아도, 착한 일을 많이 한다 해도, 산타가 주는 선물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늘 성탄 때가 되면 산타를 기다린다. 불룩한 뱃살에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빨간 옷을 입은 산타의 모습은 언제나 정겹다. 요즘은 어린아이조차 산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산타 할아버지는 교회의 성인 중 한 명을 기원으로 한다.

3세기, 지금의 터키 지방인 미라의 대주교였던 성 니콜라오이다. 성인은 대부호였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전 재산을 자선 사업에 바치고 사제가 되고, 나중에 주교가 된 후 그의 성덕과 신심 그리고 여러 기적들이 널리 알려지는데, 특히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었던 성인의 삶은 자선에 관한 많은 전설을 만들게 된다. 성인에 대한 사랑과 공경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선을 베푸는 전통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산타 클로스를 존재하게 만든 셈이다. 참고로 산타 클로스라는 이름은 성 니콜라오의 라틴어 발음이 변형된 것이고, 빨간 옷은 주교의 빨간 복장에서 유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럽의 많은 교회들은 성인을 기념하는 날인 12월 6일에 서로 선물을 나누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자선을 베풀어왔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성탄절에 사랑하는 이들과 선물을 주고받는 전통으로 이어진 것.

성경에 기록돼 있는 성탄 선물에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 바로 동방박사의 방문과 경배다. 마태오 복음에는 동방의 박사들이 위대한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하고 귀한 예물을 드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이들은 매우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었고, 초대교회에서는 왕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사람들이었다. 다른 민족의 왕을 위해 길고 험한 길을 찾아 나섰고 그 별이 인도해주는 곳에서 마침내 그 왕을 찾게 됐는데, 그곳은 호화로운 왕궁이 아니라 소나 말의 축사였고, 그 아이는 왕족이나 귀족의 후예가 아닌, 가난한 목수의 아들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기 예수를 보고 더없이 기뻐했고 준비한 귀한 선물을 기꺼이 예물로 드린다.

동방박사가 아기의 선물로 준비한 것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다. 제일 귀한 금속인 황금은 제일 귀한 사람인 왕을 의미한다. 그래서 황금을 드렸다는 것은 예수가 세상의 왕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된다.

다음으로 불을 붙이면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좋은 향기를 내는 유향은, 땅에서 하늘로 피어오르며 사라지는 모습처럼 하느님을 의미한다. 즉 예수가 구세주이고 하느님이라는 것을 뜻한다. 죽은 시체가 썩지 않도록 바르는 일종의 방부제인 몰약은, 예수가 우리 인간을 위해 고통받고 죽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구세주의 사명을 말해준다. 동방박사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선물을 예수님께 드렸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경배 예물은 예수님을 왕으로, 하느님으로, 구세주로 인정하는 것이다.

천주교 신부이기 때문에 매년 성탄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품게 되는 의문 아닌 의문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사람들에게 성탄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닐까 하는 것이다. 애인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비극적인 날이라며 슬퍼하는 사람들, 성탄절은 가족과 함께 혹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날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그리고 예수를 믿지는 않지만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고 카드를 보내고 축하 케이크를 사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주인공이 외면받는, 주인 없는 생일잔치에 환호하고 열광하고 있는지 의아해하곤 한다.

하지만 아기 예수가 기독교인들만을 위해서 탄생했다거나 믿는 이들에게만 사랑과 구원을 준다고 고백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이', 곧 온 인류에게 평화를 주러 오셨다고 믿기 때문에 성탄의 정신과 마음이 어떠한 모양으로든 모두에게 드러나는 것은 좋은 일일 수밖에 없겠지. 게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하고, 서로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일은 모든 종교와 철학이 추구하는 행복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떤 분들은 소중한 이에게 줄 선물을 이미 준비했을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아직 고민 중에 계시리라 생각한다. 다만 성탄은 아기 예수의 생일이기 때문에 그 아기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기적인 욕심과 편협한 관계에만 매이지 말고, 배려와 이해로 마음을 채우고 사랑과 나눔이 필요한 이들을 더 많이 바라볼 줄 안다면, 그래서 우리가 산타가 되고, 동방박사가 된다면, 모두에게 기쁘고 따뜻한 성탄이 되리라 희망한다.

 

방익수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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