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 부처는 토론 제안 묵비하고
일단은 서울 잔류론 나팔수 노릇
공론의 장서 합리적으로 다퉈야

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육사(육군사관학교) 이전과 관련해 지난달 김태흠 충남지사의 공개토론 제안을 받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한 달이 되도록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있는 이슈에 대해 선출직 단체장이 소통해보자는 제스처를 보낸 것인데 반응이 없는 것이다. 이런 국방부 태도는 용렬하다는 인상을 준다. 여러 가지로 장관이 토론에 응하는 것을 결심하기가 어려웠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전후 사정을 담아 회신을 해주면 된다. 그것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민원'이 발생했으면 부처 수장으로서 성실하게 답변을 내놓는 게 행정의 정석이다.

이 장관의 묵비를 앞세운 태도는 그래서 유감이다. 할말이 없으면 '입장 없음'이 입장이라고 하든가 할 일이지 지금같이 광역단체장 명의 공문을 패싱하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고 본다. 육사 이전 문제는 국방부로서 부담이 되는 정책 사안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외면하고 회피해도 이 문제는 잦아들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점이다. 엄연한 대통령 대선 공약이고 충남 정책 과제로 확정된 이상 비가역적이다. 혹여 시간은 끌어볼 수 있어도 종국에는 국방부 편도, 육사 이전 반대론자들 편도 아닌 충남 편임을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육사 이전 논의 연원은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수도권 발전대책에 수렴돼 논의되기 시작한 것으로 돼 있다. 갑작스럽게 수면으로 떠오른 게 아니라 지난 2020년 7월 육사 일원 부지에 대규모 주택건설 공급 구상이 얹혀지면서 육사 이전 문제가 정책 담론으로서의 굵직한 줄기를 형성하는 숙성과정을 거쳤다. 그런 정책 방향성을 읽은 충남에서 선제적으로 육사 유치에 공을 들여왔으며 그러다 지난 대선에서 공약 사항으로 수용된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딴청을 피우고 있다. 새 정부 지방균형발전 철학 기조에 반하는 정책 영역에서의 대선불복과 다를 바 없다고 간주한다면 이를 반박할 수 있겠나.

소위 육사 서울 존치론자들도 용렬 혹은 졸렬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정부 시절에도 육사 이전 논의가 이어져왔고 충남 논산 유치를 위한 공개 정책토론회도 무탈하게 열렸다. 그 당시에는 여야 정치권을 물론이고 정부 유관부처나 군 당국 등 어디에서도 딴지를 걸고 나오지 못했다. 지금과 같은 소신을 그때는 왜 못 보여주고 우두망찰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랬던 사람들이 정권이 교체되고 나서 육사 수호자인 양 처세술을 구사하고 있다. 저렇게 나올 만하다는 합리적인 평가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의 시류만 좇는 행태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육사 이전은 금기어일 수 없다. 얼마든지 정책 단위로서 논의할 수 있는 문제이고 후보지를 놓고 생산적인 토론을 통해 공론을 모아 나간고 해서 손해 볼일 하나 없다. 무엇보다 육사 현실 여건을 직시해 보면 마냥 현재 자리를 고집하는 것은 육사 내적 딜레마와 동의어라 할 수 있다. 학교 주변이 아파트 밀집 촌으로 변모할수록 도시 기능 연계 측면에서 육사의 이질성은 커지게 돼 있다. 실사격장은 고사하고 야외교장도 변변치 못한 게 현재 처한 실상이다. 이런 이유로 이런 치명적 부대 시설 결핍을 해결하려면 대안은 이전 카드 뿐이라는 논리가 설득력을 띠는 것이다.

육사 이전은 정부 정책과제로 채택된 만큼, 이를 무위로 돌린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랬다가는 엄청난 후과를 부르게 된다. 전국단위 선거가 다가오면 육사 이전은 또 도마에 오를 게 자명하다. 표가 되는 소구력 강한 사안에 대해 여야 모두 강 건너 불 구경할 리 만무여서다. 그렇게 시달리는 길을 자초하는 것은 단견이다. 육사 미래 비전을 위해서도 유관 기관, 당국 모두 지방 이전 공론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