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신 서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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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산성 물극필반이란 말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주역, 태극을 비롯한 음양 사상에도 나타나는 동양철학의 핵심이다. 상반상성은 서로 모순되고 대립되는 쌍방이 모두 같이 존재한다는 존재론적 관점이이다. 물극필반은 모순되고 대립되는 쌍방은 언제나 자신의 반대편으로 진화한다는 가치론적 관점이다. 두 말을 모두 합하면 공존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있음이 없으면 없음도 없고, 높음이 없으면 낮음도 없으며 따뜻함이 없으면 차가움도 없고, 사랑이 없으면 미움도 없다. 이 말은 모두가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큰 것이 있다는 말은 작은 것이 있다는 말이고, 내가 있다는 것은 상대가 있다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상대의 모순을 내가 알고 나의 모순을 상대가 안다 해도 내가 상대의 모순을 배우고 상대가 나의 모순을 배운다는 것이 공존의 한 모습이다. 그래서 '어떻게 공존해야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가'라는 사회적 고민이 대두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역병과 함께 위험 수위로 치닫고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말이 경쟁이지 사실은 전투나 다름없다. 이 두 문제에서 코로나19는 환경오염이 주된 원인이 되고, 치고받는 경쟁은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이 원인이 된다. 두 문제 중 코로나19는 전 인류가 합동으로 잘 대응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투쟁적 경쟁은 어떤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투쟁적인 경쟁에서 서로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을까? 거기에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다. 그 답은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이해에 있다. 모순되고 대립되는 쌍방은 언제나 자신의 반대편으로 진화한다는 이해이다. 인간의 욕심이 낳은 이기심은 '내가 이기는 것도 옳고 상대가 지는 것도 옳다'는 등식을 관념화한다. 말을 바꾸면 '내가 지는 것도 부당하고, 상대가 이기는 것도 부당하다'라는 개념은 다르지만 성질이 같은 등식이 관념화한다. 이것은 물극필반의 사상에 어긋난 것으로써, 모순되고 대립되는 쌍방이 서로에게 진화한다는 말은 대립 되어있는 상대를 자신만큼 인정한다는 뜻이다. 상대를 나만큼 인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말이 성립될 수 있다.

'내가 아프면 네가 아프고, 내가 즐거우면 네가 즐겁다'와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네가 즐거우면 내가 즐겁다'는 말이다. 공존과 협동은 한 개인에게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다. 만일 공존과 협동이 한 개인에게만 유리하다면 공존과 협동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공존과 협동의 정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서로가 같음을 인식하는 정신에서부터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극필반은, 행복을 원한다면 협동하고 공존하라는 가르침이다. 여기서 정신적으로 한 가지의 기둥을 세울 필요가 있다. 내가 행복해야 타인이 행복하다가 아니고, 상대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도 아니다. '우리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고 상대도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정신의 기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난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신은 '나', '너'의 정신이 아니라 '우리'라는 정신이다. 집에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강아지가 즐거워하고 고양이가 좋아하니까 내가 즐겁지 않던가? 그 반려동물들을 '우리'라는 울타리에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하고 싶다. '나' '너'라는 말보다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는 우리가 되어보자는 것이다. 진정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랄 테니, 우리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하자는 것이다.    도신 서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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