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순 지구촌사랑교회 담임목사·시인
박대순 지구촌사랑교회 담임목사·시인

우리는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 이웃을 잘 만나지 못하면 애로가 많다. 윗집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청소기를 돌린다든지, 큰소리가 난다든지 해서 간혹 신문에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칼럼을 읽다 보니 어느 동네에는 길을 두고 반대쪽에는 중국 교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말이면 친구들과 아침 6-7시까지 밤이 새도록 놀면서 큰소리를 질러 주변 사람들이 아침잠을 설친다는 것이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웃을 잘못 만났어" 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이웃으로 인한 파동으로 한바탕 술렁이고 있다. 이웃을 잘 못 만나면 내 삶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정직하지 못한 이웃으로 인해 덩달아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이웃이 멀리 있기도 하고 가까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세상은 삭막하고 불안하고 안심할 수 없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처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공식은 없는 것일까.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해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고 말씀했다. 그러자 율법 교사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했다. 그때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했다. 이때 율법 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또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러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 이 질문을 통해 율법 교사의 불순한 동기를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율법 교사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한 비유를 들었다.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예수님은 율법 교사에게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질문했다. 예수님이 하신 비유의 말씀을 듣고 보면 답은 명확하다. 그래서 율법 교사는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율법 교사에게 "가서 너도 이같이 행하라" 하셨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이웃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유대인은 지역과 혈통, 종교적인 틀 속에서 이웃을 규정했다. 그들이 정한 이웃 개념에 사마리아 사람은 들어올 수도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을 강도 만난 유대인의 이웃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유대인이 기절초풍할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주셨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도 찾아가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뜻이 무엇인가.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필요한 도움을 실천하는 것이 이웃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이웃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이다. 누가 진정한 이웃이 되어 줄 건가. 예수님을 따라 제자의 길을 걷고 있는 교회와 우리가 아닌가.

영화 '클리프 행어'에선 절벽에 매달려 조난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밧줄 하나에 여럿이 버틸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기에 아래쪽 사람은 스스로 생명줄을 자른다. 350여 년의 세계 등산 역사에서 수없이 이런 상황에 직면해왔기에 산악인들은 암묵적인 윤리가 있다. 등반보다 조난자 구조가 우선이며 불가항력의 상황일 때는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는 현복환씨는 아이들에게 선행하고 김범순·박선희·정정화 씨는 어른들을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돌 본다. 이런 분들이 강도 만난 자를 돕는 진정한 사마리아인이 아닐까.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이 필요한 시대에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산타가 아닐까.

박대순 지구촌사랑교회 담임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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