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신스님 서산 서광사 주지 
도신스님 서산 서광사 주지 

얼마 전 (사)내포문화숲길 회원들과 제주도 올레길을 걸은 일이 있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있는 제주도는 돌담을 낀 골목마다 센 바람이 불었고, 살갗에 밤 가시가 닿는 것처럼 섬뜩섬뜩했다. 아스팔트에서 바람을 안고 걸어야 할 때는 몸을 돌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가고 싶을 정도로 한 발짝 옮기기도 힘들었다. 회원 중에는 걸음이 빠른 분도 있었지만 걸음이 느린 분도 많았는데, 며칠에 거쳐 긴 구간을 걷다 보니 중간에 포기하는 분도 더러 있었다. 길은 비교적 평탄했지만, 가끔은 산을 오르는 구간과 현무암의 돌 구간도 나와 그곳을 지날 때는 호흡 조절과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했다. 물론 제주 올레길은 안전과 휴식 시설의 관리가 매우 잘 되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가 걸었던 11, 12, 13코스는 아스팔트와 차도를 낀 보도가 많았고, 휴게 시설이 계발단계에 있는 길이어서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긴 구간을 걷다 보면 항상 경험하는 일이 있다. 부지런히 걷는데도 나보다 앞서는 사람이 많고 뒤떨어지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 한참을 걷다 보면 '외로움'이 생긴다. 걸음이 빨라 앞서간 사람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내 눈에서 벗어난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 왜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것일까……. 위로를 받는 것은 뒤에 오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나마 뒤에 오던 사람들마저 한두 사람씩 앞질러 가고 모두 나를 질러 앞서 가버리면 생각이 서둘러진다.

근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혼자 긴 구간을 걷고 으슥한 언덕을 오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삶은 혼자 걷는 것이구나. 내가 따라가지 않으면 동반자는 없는 것이구나' 이런저런 상념에 뒤섞여 외로움에 쓸쓸함을 보태 세상을 혼자 사는 척 걷는다. 또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만일 여기서 내가 사고가 생겨 소리를 지른다면 사람들이 알아들을 거리에 있는 것일까?' 불안한 마음에 일행 중 아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본다. 대답이 없다. 마음이 더 불안해지다가 그런 저런 모든 것을 포기한다. 포기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시 말해 편안해서 편안한 것이 아니라 포기해서 편안한 것이다. 시간이 제법 지나 산모퉁이를 도는데 누군가 서 있다. 등산뿐만 아니라 길이란 길은 다 걸어본 백전노장 한 분이 서 있는 것이다. 나의 상태를 아래위로 보면서 괜찮은지를 묻는다. 그리고 초콜릿 하나를 건네준다. 뒤떨어져 못 오는 자가 없는지를 살핀 것이다. 뒤를 돌아본 것이다. 나는 성성했지만, 뒤돌아봐 준 그 마음이 어찌나 고맙고 눈물이 나던지…

지난 10월 29일 밤에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왜 우리는 뒤돌아보기를 게을리 하는 것일까? 경책이 될 만한 일들이 수없이 많았다. 어쩌자는 것인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어른들은 어디 있는 것인가? 요즘 같으면 정말 아이들 보기가 부끄럽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 중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뒤에 있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잘 놀고 공부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이런 대형 참사가 있을 때마다 방송뿐만 아니라 많은 지도층과 지식인들이 안전을 얘기하지만 모두 그때뿐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 '그때 뿐'인 이 병을 고쳐야 한다.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면,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거기 늘 안전이 있어야 한다.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은 아픈 일이지만, 우린 그것을 해야 한다. 거기서 답을 찾아내고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는 2014년 세월호 참사와 불과 8년밖에 안 된다. 그사이 많은 사고가 있었음에도 우리 사회는 뒤돌아보는 것을 게을리 했다. 이제 더는 이런 일이 생겨선 안 된다. 아이들이 모이는 곳, 사람이 모이는 곳, 안전이 요구되는 곳을 끝없이 바라보고 지키기 위해서 정치와 정치인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우리 사회는 한시도 뒤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다른 이와 동행할 때는 앞만 보고 가는 것을 경계하라."시던 중광스님의 말씀을 생각해본다. 우린 모두 같은 길을 가는 동행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광사 주지 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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