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순 지구촌사랑교회 담임목사·시인
박대순 지구촌사랑교회 담임목사·시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매일 새로운 소식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화재와 수해, 한파와 태풍, 전쟁과 경제 위기에 대한 소식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우리는 가끔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졌다는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듣는다.

2022년 6월 16일에도 25t의 배가 전복이 됐다. 그후 해경의 도움으로 선원이 구조됐다는 이야기가 뉴스를 통해 알려졌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리고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생명을 구조하는 119 소방대원과 길을 가다 쓰러져 있는 사람을 신고하고 구조하는 일은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도움이 필요한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방치돼 구조의 시간을 놓치는 안타까운 일도 보게 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누군가 도움을 주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강도 만난 자를 지나쳐 간 제사장과 레위인의 생각은 아닐까.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방관자 효과'라고 부른다. 이처럼 방관자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함께 그 일을 만나게 되면 책임감이 분산되고 전가하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내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 돕는 사람이 등장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혼자 보았을 때는 적극적으로 구조를 하게 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선한 사마리아 효과라고 한다. 누가복음 10장 25절 이하에 보면 여리고 성을 향해 가는 길에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강도를 만난 이웃에게 도움을 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다. 이는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우리의 이웃은 누구입니까'라는 율법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닌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도왔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다. 우리는 주위에 힘 있는 자보다 우선 약하고 상처 입은 자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누군가는 나 대신 강도 만난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겠지 하는 방관자 입장에서 내가 아니면 누가 저 사람의 이웃이 되겠는가 하는 사마리아인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벌써 한 해의 끝자락이 보인다. 우리의 이웃들에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재난 속에 나는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이웃의 아픔과 소외된 자를 위로하고 그들의 손을 잡아 세우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해보면 안 되는 것일까.

선한 사마리아인의 헌신은 언제나 감동이다. 자신을 버려 이웃을 구하는 의인이 군인이라는 직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01년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 생명을 잃은 유학생 이수현씨 묘소에는 일본인의 헌화가 끊이지 않는다. 또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분노의 역류'(1991년)에는 누구나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황소(bull)라는 별명의 소방관 커트 러셀은 화재 진압 중 건물이 무너져 추락하던 동료의 손을 붙잡았다. 이대로 가면 둘 다 죽을 상황이다. 그때 대화는 딱 두 마디다. "Let me go, Bull" "You go, we go"

그리고 여리고에서 강도를 만난 유대인을 치료하고 치료비까지 준 선한 사마리아인은 상류층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니었다. 유대인으로부터 천대와 멸시를 받던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래서 기독교의 나라 독일 프랑스에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도 있다. 구조해야만 하는 위험이 있는데도 구조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도 여전히 이웃의 눈이 되고 팔이 되고 다리가 되는 박미리씨 같은 분이 있다.

박대순 지구촌사랑교회 담임목사·시인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