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 때마다 신·구 권력 충돌
극단적 진영 논리는 적대감만 키워
의혹 해소 필요…'한풀이'수사 안돼

송연순 논설위원
송연순 논설위원

검찰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었다. 이 대표의 최측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되는 등 검찰의 칼날이 이 대표와 민주당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면서 여야 갈등도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첫 예산안 시정연설 보이콧이라는 강수를 뒀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김없이 전 정부의 비리를 겨냥한 전방위 수사가 시작되는 것은 새로울 게 없다. 새 정권은 언제나 과거 정부를 부패 정권으로 낙인찍으면서 적폐 청산이라는 카드를 꺼내고, 전 정권은 이를 '정치보복', '야당탄압'이라고 맞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에 '적폐 청산'을 전면에 내걸었다. 집권 후에는 전 정권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진행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뇌물과 횡령,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각각 구속 수감돼 재판을 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 시절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기치 아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고 나란히 법정에 세웠다. 이명박 정부에선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를 고리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는데,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비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사실 오랜 기간 쌓여온 악습을 없앤다는 '적폐 청산'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모토(motto·신조)였다. 광화문 촛불집회의 여파로 적폐 청산은 한때 개혁의 지향점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적폐 청산은 자신들이 하면 말 그대로 악습을 끊어내는 적폐 청산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정치 보복으로 여긴다. 이런 풍토 속에서 적폐 청산과 정치보복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자신이 권력을 가졌을 때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거꾸로 권력을 잡게 되면 자신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적폐 청산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인 2017년 "도둑 잡는 게 도둑에겐 보복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보복이 아니라 정의와 상식의 구현으로 보인다"며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보복이라면 그런 정치보복은 맨날 해도 된다"고 했다. 그런 그도 자신과 관련된 여러 의혹들, 즉 '사법 리스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자 정치탄압이라며 맞서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야당 시절인 2016년 11월 청와대가 검찰 압수수색을 거부하자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 "대통령이라고 예우할 것이 아니라 그냥 피의자로 다루면 된다"며 즉각적인 강제수사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후 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박근혜 정부에 대한 검찰의 적폐 청산 수사가 진행됐다. 문 전 대통령은 정작 최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 감사원의 조사 요청에 대해서는 "무례하다"며 불쾌한 반응을 나타냈다. 민주당도 정치보복이라며 반발했다.

정치권에서 적폐 청산과 정치보복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되풀이되는 것은 상대방을 경쟁자 혹은 맞수인 '적수(敵手)'로 보지 않고 오로지 싸움의 상대 '적(敵)'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이런 풍토에서는 승자독식의 '제로섬 게임'만 있을 뿐이다. 승자와 패자가 분노와 복수의 뫼비우스 띠 속에 갇히면서 정치보복 논란은 사라지지 않게 된다.

극단적인 진영 논리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만 키운다. 협치의 토대도 허물어뜨린다. 최고의 복수는 복수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공자는 복수의 여정을 떠나기 전에 두 개의 무덤을 파라고 말한 바 있다. 하나는 '적'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전직 대통령이든 당 대표든 의혹이 있다면 철저한 수사를 통해 해소돼야 한다. 다만 전 정권 대한 한풀이, 먼지 털이식 수사로 흘러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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