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익수 사도 요한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방익수 사도 요한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몇 주 전, 저녁 약속이 있어 퇴근길 차량 행렬에 합류한 적이 있다. 어둠이 살짝 깔리기 시작했고 약간의 정체를 벗어나 외곽도로 향하던 중 중앙분리대 화단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달려드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바로 차량에 충돌하는 것을 느꼈다. 룸미러를 통해 보인 무언가는 쿵 하면서 굴러 떨어지는 작은 고라니였다. 생애 첫 교통사고를 내는 순간이었다. 교통의 흐름상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고 다음 신호를 지나 길 가장자리에 차를 세웠다. 긴 거리를 가기엔 어려운 상태여서 정중히 약속을 취소하고 민원신고센터에 처리를 부탁했다.

혼란한 와중에 처음 들었던 생각은 사고 자체에 대한 짜증스러움이었다. 약속도 못 지키고 수리비도 물어야 하고 며칠 동안 자잘한 불편함을 겪을 생각을 하니 그 고라니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맞은 편에 쓰러져 있는 그 녀석을 보자마자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바로 느끼게 됐다. '나는 조금만 귀찮으면 될 뿐이고 큰 돈이 들어갈 일도 아니지만 저 녀석은 맞은 편 길을 건너려다 저 세상으로 가버렸구나'. 작은 불편과 비용이 생명과 비교될 일이 아님에도, 나의 편의만을 생각한 나 자신이 부끄럽고 죽은 고라니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세종시는 개발되기 이전엔 고라니들과 다른 야생동물들의 땅이었다. 여전히 고라니들은 습지와 평야 지대에 서식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교구청 옆 야산에도 자주 보이고, 종종 교구청까지 들어와 배설물을 남기기도 하며 밤에는 기괴한 울음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아마도 그 친구들은 여전히 이곳이 자신들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세계적 멸종 위기종인 고라니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천적이 없어 많이 번식하고 있다. 하지만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유해조수로 지정돼 있다. 단지 인간의 노동을 방해하기 때문에 기분 나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또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동물이라서 '자라니', '킥라니' 등의 표현에 사용되는 것도 그 녀석들 입장에서는 아주 불쾌한 일일 것이다.

고라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중, 어느 수목원에서 화초를 먹는다는 이유로 고라니를 사살했다는 유감스러운 뉴스를 접했다. 꽃 몇송이를 먹는 일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심각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그 녀석들은 알고 있었을까. 그들과 우리의 공생은 과연 그리 어려운 일인지….

비단 고라니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활이 조금 더 편리해지고 안락해지기 위해 많은 동식물이 위협을 받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개발과 보호, 인공과 자연이 서로 대치돼야 하는 개념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보시니 좋았다'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표현으로, 하느님께서 하루하루 세상을 만드시고 스스로 감탄하여 하신 말씀이다. 자연과 인간의 창조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었을지, 신적 질서 안에서 서로 조화와 공생을 이뤄가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섭리인지 이 표현 안에 잘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창조론에서 우리가 깊이 받아들여야 할 점은 인간 역시 창조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피조물이기에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한다는 것과 모든 자연과 생명이 서로 공생공존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어느 한쪽의 균형이 무너질 때 놀랍게도 스스로 그 균형을 찾아가는 능력을 보여준다. 비록 그 방식이 인간이 원치 않는 방식일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더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면, 더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지구는 우리에게 가장 불행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위한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가지려 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모든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자세가, 그리고 함께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현실적인 지혜와 구체적인 실천이 어우러져야 한다. 인간에게도 고라니에게도 모든 동식물과 자연에게도 '보시니 참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방익수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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