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산에서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40대 여성이 경찰에 4번이나 신고하고,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았지만 대낮에 남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피해자의 아들이 "엄마를 살해한 아버지가 죗값을 치르게 해 달라"며 엄벌을 촉구하는 청원 글을 대통령실 등에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녀가 그동안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우리가 겪는 상당수의 고통은 저 멀리 있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 의해 초래될 수 있다. 이런 경우 가까운 만큼 아픔의 상처가 크다. 또, 자주 마주치기 때문에 용서가 쉽지 않다. 밖에서는 대인관계가 좋고 관대하더라도 집안에 들어오면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이 의외로 많다.

옛날 경론에 통달한 젊은 스님이 가는 곳마다 인정을 받지 못해 한숨 속에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길 가던 노스님이 "그대는 불법을 배웠다면서 성불하기 전에 사람의 인연을 잘 맺어야 하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대가 아무리 불법에 통달하였어도, 인연이 없으면 또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저는 어찌 해야 합니까?". "내가 그 인연을 만들어주겠네". "그대가 가진 것이 무엇이 있는가?". "입고 있는 옷과 서너 벌의 승복뿐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하네". "그 옷을 다 이리 주게" 하여 시장에 내다 팔아 그 돈으로 모두 음식을 사왔다. "이 음식을 들고 따라 오게" 하고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모든 음식을 바닥에 펼쳐놓고 이렇게 발원하라 하셨다. "내가 20년 뒤에 바야흐로 크게 부처님 법을 펼치리라".

젊은 스님은 노스님이 시키신 대로 간절하게 기도 발원하였다. 기도가 끝나자 산짐승, 새, 곤충, 벌레, 개미들이 잔뜩 몰려와 음식을 먹어치웠다. 그로부터 20년 후 스님께서 불법을 펼치기 시작하자 매일 엄청난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20여 년 전, 산속에서 기도 회향 때 와서 음식을 먹었던 산짐승, 새, 곤충, 벌레, 개미들이 인도환생 한 것 들이었다.

노스님께서는 그저 앉아서 경이나 염불을 달달 외우는 것 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여인들 중에는 집에서 기르던 애완동물이 죽으면 울고 불며 애통해한다.

그러나 자기 뱃속에든 태아를 손톱이나, 머리카락 잘라 내듯, 아무 죄의식 없이 잘라내 버린 경우도 있다. 도덕적 죄의식이나 뒷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 없이 큰 걱정거리 하나를 덜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미물도 살려내야 하는데, 자기 뱃속에 살아있는 자식을 죽이고도 죄를 받지 않겠다거나, 소원성취 하고자 기도하는 것은 염치도 없고 뻔뻔스러운 행위다.

산에 올라 야호! 하면, 야호! 하고 메아리가 돌아온다. 웃으면 웃음소리가 돌아온다. 인간관계도 메아리와 똑같다. 상대를 따뜻하고 자비롭게 대하면 상대도 나에게 똑같이 되돌려준다. 세상에서 나의 가장 큰 원수는 아는 사람, 친인척, 가족, 결국은 나 자신이다.

낙태아 입장에서는 가장 가까워야 할 엄마가 원수가 된 것이다. 세상에서 나에게 불행을 가장 많이 제공한 사람도 나 자신이다. 중생들은 행복을 위해 하는 짓들이 불행만 초래한다. 습관적 음주로 알코올 중독이 되는가 하면 과다영양 섭취로 병마를 부르고, 재물을 탐하여 부정행위를 하여 망하고, 장난 삼아 시작한 도박으로 패인이 된다.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다.

누굴 원망하랴?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자비로운 언행으로 살아가자. 부처님께서는 사람, 동물, 벌레까지도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 하셨다. 교통사고, 강도 살인, 가족 간 살인, 자살, 낙태, 등 생명경시 풍토를 깊이 반성하자. 나의 목숨이 소중하면 남의 목숨도 소중한 것이다.

사람 목숨이 소중하면 동물, 미물 목숨도 소중하다. 중생들은 어린 돼지를 잡아먹을 때 육질이 부드럽다며 좋아하고, 늙은 돼지를 잡아먹을 때 육질을 부드럽게 하려고, 얇게 썰어서 '대패 살', '삼겹살'이라며 즐긴다. 내가 남의 살을 뜯어 먹으면 언젠가 내 살도 내줘야 한다. 우리 몸은 불성을 담는 신성한 그릇이다. 이 신성한 그릇에 동물의 사체를 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채식을 하면 살생을 피할 수 있어서 식사 시간마다 방생을 행할 수 있다. 모든 동식물과 자연환경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생명존중의 사회로 나아가자.
 

도신스님 서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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