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순 지구촌사랑교회 담임목사·시인
박대순 지구촌사랑교회 담임목사·시인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네 몸과 같이 네 이웃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무엇보다 네 이웃을 가족같이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웃의 허물이 보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베드로는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7-8) 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20-21)고 했다.

어느 글을 보니 어떤 사람이 바구니 두 개를 지고 다녔는데 하나는 앞쪽에 메고 또 하나는 뒤쪽에 메고 다녔다. 이것이 무슨 용도인지 보니 앞쪽에 멘 바구니는 남의 허물을 담고 뒤쪽에는 자신의 허물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길을 가다 보니 자기와 똑같은 바구니 두 개를 가진 사람을 만났다. 그래서 무엇을 담았는지 보니 앞에는 자신이 잘한 것을 담고 뒤 바구니에는 자신의 허물을 담아 놓았다.

이 두 사람이 친구가 돼 남의 허물과 자신이 잘한 일을 서로 말하면서 다니다가 자기들과 똑같은 바구니 두 개를 메고 다니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됐다. 이 사람은 무엇을 담고 다니는지 궁금해서 그 사람의 바구니를 들여다봤다. 이 사람의 앞 바구니에는 이웃 사람의 칭찬받은 이야기를 담고 뒤 바구니에는 자신이 칭찬받은 일에 대해 담아 놓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가 칭찬받은 이야기를 담은 뒤 바구니의 밑을 뚫어 놓았다. 그래서 자신이 잘한 이야기가 흘러내리도록 해 이웃 사람들이 자신의 칭찬받은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 이 사람의 행위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아름다운 행위가 아닐까. 예수님도 율법사에게 '너도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강도 만난 자는 어쩌면 허물 많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이웃을 사랑하려면 허물 많은 이웃의 이야기를 덮어줄 만한 사랑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이웃의 허물과 아픔을 덮어줄 사랑은 아가페 사랑,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불가한 것이다. 허물을 덮어주고 조건 없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와 사랑을 마음 깊이 체험하지 않고는 우러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0-11) 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한 사랑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에서 실현됐다.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묻는 율법사에게 예수님은 실천된 사랑 이야기를 하셨다.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된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해 지나갔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여행 중에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줬다.(눅10:25-35절) 물론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신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그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끝까지 보살폈다는 것이다.

제11호 태풍 힘난노의 영향으로 이웃이 어려울 때 포항에 있는 해병대원들의 수고와 이웃 어른들을 네 몸과 같이 사랑으로 돌보는 김정화 씨도 진정한 이 시대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앞 바구니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가득 담고 전하면 안 되는 것일까.

박대순 지구촌사랑교회 담임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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