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 교수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 교수

"내가 80이 넘었습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수술은 안 합니다."

함께 온 가족들도 난감한 표정이 분명하고, 의사인 나도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위암 진단 후 절제 가능한 암으로 판단돼 수술을 권유하던 차다. 차분히 수술 준비를 하고, 절제를 하면 의학적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 환자가 고집을 부린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위험도가 큰 수술이 아니라고 해도 수술 거부라는 입장은 확고하다. 이런 저런 설명을 하고 좀 더 생각을 해보시라고 한 뒤 다음 진료를 예약한다.

수치를 말하지 않더라도 고령화는 이미 현실이 됐다. 소위 `어르신들`이 많아졌고, 암을 비롯한 많은 병들이 나이가 듦에 따라 그 빈도가 증가한다. 암환자 중에서도 고령의 환자가 급속하게 많아졌다는 뜻이다. 같은 병을 가진 환자가 40대 혹은 50대의 중장년도 있는 반면, 60-70대 환자와 80대 환자의 암환자가 함께 존재한다는 뜻이다. 같은 병이라고 하지만 항상 같은 치료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는 것 같다. `노년` 혹은 `나이 듦`이 암의 치료에 또 다른 고민점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암의 치료에 대한 부분은 어느 정도 명확한 결론이 있다. 하지만 고령이라는 부분에서는 아직도 선명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65세 이상이라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는 사람마다 다른 점이 너무 많고, 참고할 만한 뚜렷한 지침이 없다. 노년을 대하는 의사의 고민이 많아지는 이유다. 원칙적으로는 암이라는 병의 치료를 결정할 때 나이는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다. 50대의 암 치료와 60대의 암 치료가 다르지 않고, 80대 혹은 90대의 암 치료가 다르지 않다. 나이대별로 암 치료의 방향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제가 가능한 진행성 위암은 수술이 최선이다`라는 원칙은 모든 나이에 다 같이 적용된다.

오히려 요즘은 암이라는 병의 진료보다는 노년이라는 부분이 더 신경이 쓰인다. 왜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을까? 고령자의 암 치료가 어떤 점에서 다른 것일까? 앞에서 말한 환자의 경우처럼 위암이라는 큰 병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80이 넘어선 내 나이가 더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수도 있다. 왜 의사는 암이라는 병에 집중하는 반면 환자는 나이에 초점을 더 맞추는 것일까? 동일한 상황을 바라보는 의료진과 환자의 관점 차이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관점의 차이 중 하나는 치료의 선택과 결과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암을 치료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치료의 결과는 `안전하게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것이다. 오래 살 수 있는 점이 가장 중요한 치료 방법의 선택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는 암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계에서는 변치 않는 불문율이며 특히 중장년층의 연령대까지는 치료 방법을 결정한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원칙이다.

하지만 고령의 환자에게는 조금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앞으로 살날이 길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면 남은 여생의 기간 자체보다는 의미 있는 시간 즉 양보다는 질이 보장된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치료의 만족이 오래 사는 것 보다는 큰 장애 없이 자기 스스로 앞가림 할 수 있는 품위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문제에 정답이 없다. 하지만 다수의 연구와 조사를 통해 고령의 환자들의 상당 부분 이러한 생각에 동의한다는 점, 그리고 연령이 증가할수록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치료라도 환자의 이해와 동의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결국 그 환자는 수술을 받지 않았다. 여전히 아쉽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수술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내 말에는 별 관심이 없고, "수술하면 밥은 잘 먹겠습니까? 고생만 시키고 오래 살면 뭐 합니까?"라며 체념하던 환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런 부분에서 보수적인 나에게 환자는 늘 새로운 가르침을 준다. 한 면만을 바라보지 말고 여러 가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얼마나 더 살 것인가를 저울질하던 나에게 이제는 그 저울의 눈금만 바라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좋은 물건은 무게만 많이 나가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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