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 교수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 교수

매년 2월 4일은 `세계 암의 날`이다. 1999년 암 치료의 전문가들이 모여 암이라는 병이 21세기에도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중요 질환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선언문을 준비하게 된다. 이러한 전문가의 노력은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의 수장들을 움직이게 하고, 2000년 2월 4일 `암 퇴치를 위한 파리선언문`을 발표한다. 이후 국제암연맹과 세계보건기구(WHO)가 참여하게 돼 암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을 넘어, 각국 정부와 일반 대중에 대한 암의 인식 제고 등에도 많은 발전과 기여를 하게 됐다.

팬데믹 시대에 맞는 암의 날은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일반인들 그리고 의료진은 물론이고 언론에서도 거의 언급조차 없다. 물론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의학적 문제는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일 것이다. 모든 논의를 다 삼켜버리는 큰 블랙홀과도 같다. 코로나 말고도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 많지 않은가. 암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일련의 사건이 2년을 넘어간다. 아직도 일상은 딴 나라 이야기 같다. 우리의 암환자 진료는 이런 상황에서 차질이 없었을까.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는 이번 세계 암의 날에 기획한 기사에서 팬데믹 시대의 암 진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암환자들이 진단과 치료가 제때 시행되지 않아 추후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보도하고 있다. 인도 병원의 의료진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실제로 60여 개 국가에서 수술이 필요한 암환자 7명 중 1명이 수술을 받지 못했고, 인도의 경우에는 암환자의 절반 정도가 수술이나 항암요법 등의 치료를 제때에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통계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팬데믹이 없던 시기와 비교해서 긍정적인 결과가 아닐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소식은 전령 리보핵산(mRNA)를 이용한 코로나 백신의 성공이 암치료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론적인 장점을 떠나 당국의 시판 허가와 상용화까지 마냥 요원할 것 같던 mRNA 백신이 불과 1년여 만에 상용화돼 전 세계인에게 접종됐다. 사람에 대해 승인을 받은 최초의 mRNA 백신이다. 백신의 성공은 해당 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로 이어지고 덩달아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받게 되었고, 그 중 유망한 분야가 암 치료다. 코로나로 인한 암 치료의 어려움이 있는 반면 다른 부분에서는 암 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도 마치 인생의 양면성을 보는 것 같다.

의료계는 어떤 식으로든지 코로나시대는 끝이 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바이러스가 박멸되고, 치료제가 나온다는 것이 완전한 해결일 것이다. 하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보면 코로나시대가 이런 식의 종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 의료자원으로 관리가 가능할 정도의 감염률과 약화된 증상을 보이는 질병 정도가 될 것 같다는 예상이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적응하는 것으로 일련의 코로나 상황이 정리될 것 같다고 한다.

암이라는 병을 바라보는 입장도 조금은 비슷하다. 과거에는 소수의 암환자를 제외하고는 암 치료의 결과는 절망적인 경우가 많았다. 진단과 치료법에 대한 발전으로 장기 생존하는 암환자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더 이상 암이라는 질병에 대해 절망적인 시선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전문가도 이제는 암은 관리가 필요한 병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소수의 생존 아니면 다수의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형태의 병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함께하는 병으로 간주된다. 과학이 발전하더라도 암이라는 병이 아예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지난 시절 암이라는 병이 당시의 의료 수준에서 감당하기 너무 힘든 상대였다면, 이제는 조금 얘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치료도 가능하고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억제할 수 있는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 의학 수준에서 감당할 만한 일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익숙해지고, 관리가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코로나도 결국 그런 길을 가게 되지 않을까? 소위 `코로나와의 공존`이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이제는 이런 논의가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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