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선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김화선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2000년대 초반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설치된 `날씨 프로젝트(The Weather Project)`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은 예술이란 그 자체로 완결된 독립적 개체가 아니라 관람객의 개입과 더불어 상호작용하는 만남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얼마 전 대전에서 열리고 있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살아있는 전망대` 전시를 찾아 그의 예술 세계를 말 그대로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다. 태양의 빛과 물, 바람과 안개, 이끼 등을 예술 작품의 경계 안으로 불러들이고 기하학과 건축, 수학에 근거한 배치로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여기의 공간을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관객의 지각과 움직임, 그리고 전시장을 방문한 시각의 자연광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엘리아슨의 입체 구조물은 자연의 요소나 주변 환경과 더불어 존재하는 예술의 세계를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현재를 보여주는 캐비닛`이란 작품이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로 보여주는 외부의 풍경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검은색 돔의 한쪽 벽에 뚫어 놓은 구멍을 통과해 맞은 편에 거꾸로 뒤집힌 채 맺혀있는 이미지는 익숙한 대전의 정경이었다. 몇백 년 전부터 이미 잘 알려진 카메라의 원리를 차용한 이 작품은 다음 작품인 들쭉날쭉 흩어진 하얀 선들을 한 개의 온전한 집합체로 오인하게 만드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바라보는 주체의 시선을 속이는 돔의 내부에서 외부 공간을 동시에 지각하면서 우리의 삶이 세상과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행동으로 옮기면서 경험하는 순간, 관객이 예술의 일부가 되듯 우리는 그제야 세계에 개입할 수 있다. 그러니 그저 팔짱을 끼고 관조하는 태도만으로는 예술이든 세계든 제대로 감각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방향을 바라볼지,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는지에 따라 예술 작품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것처럼 결국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움직이는가가 사유의 토대가 될 터이다. 올라퍼 엘리아슨이 `상호적인 개입` 혹은 매개라고 표현하는 것들 속에서 읽어낸 의미는 예술 역시 삶의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바꿔말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던져본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인 로컬(Local)에 대한 중요성을 상기한다. 그리고 로컬의 가치야말로 삶을 생성하는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 예술이 현실의 맥락과 연결되면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발 딛고 있는 공간의 풍경 속에서 형성된다. 대전이라는 로컬에 살면서 대전의 거리를 걸으며, 우리가 바라보고 그럼으로써 사유하는 삶의 풍경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개입하고 변화하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두 받을 딛고 있는 삶의 맥락에 좌표 설정을 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기 입장을 밝히는 것을 꺼리게 만들고, 언제나 객관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이제는 엔리케 뒤셀이 이야기했듯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고 있는 콜럼버스의 시선 대신 햇빛을 받아 뜨거워진 모래사장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서서히 다가오는 콜럼버스의 배를 바라보는 원주민의 시선에 설 필요도 있다.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설정한 좌표의 위치는 바뀌어나가겠지만,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하는 자세를 갖추고 두 발이 감각하는 로컬의 온도를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화선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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