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숨바꼭질의 기본은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감추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다섯 살 전후의 아동들의 숨바꼭질에는 이런 기본이 빠져있다. 거실창문의 커튼 뒤에서 차렷 자세로 숨죽인 채 숨어있다. 그런데 문제는 커튼의 길이가 무릎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아리와 발이 그대로 보인다. 그러다 술래가 자신을 찾아내면 깜짝 놀란다. 이렇게 완벽하게 숨었는데, 어떻게 찾아냈지?

아동들은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과 똑같은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신에게 안 보이면, 다른 사람에게도 안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관점을 고려하지 못하는 이런 사고방식을 자아중심적 사고라고 한다. 만약 다섯 살 전후의 아동들에게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가방과 뽀로로가 그려진 가방 중에서 엄마에게 줄 선물을 고르라고 하면, 아동들은 뽀로로 가방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엄마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동들은 타인의 관점을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을 여덟 살 전후에 획득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가진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경험한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친구는 싫어할 수 있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친구는 좋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초등학생 때 획득한 타인의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손상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권력의 맛이다. 권력은 자아중심적으로 세상을 조망하게 한다. 한 연구에서는 참여자들에게 맞은 편에 앉아있는 사람이 읽을 수 있게 이마에 알파벳 `E`를 써보라고 했다. 맞은 편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려면 `E`를 뒤집어서 써야 한다. 즉, 이 실험의 과제는 맞은 편 사람의 관점에서 `E`를 써야 하는 것이었다. 결과에 따르면, 권력이 높아진 느낌을 받았던 사람들은 비교집단보다 `E`를 뒤집어서 쓰는 과제에서 더 많은 실수를 범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력의 맛이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다.

권력은 권력을 가진 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그 결과, 권력의 맛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둔감해지고, 자신의 목표와 욕구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권력의 맛은 약자의 목표와 욕구에 대한 관심을 잃게 만든다. 그 때문에 사회적 약자를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했던 사람이 권력을 잡고 난 다음에 약자의 아픔에 무감각한 사람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권력의 맛은 어른을 다시 자아중심적 사고에 가둔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득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판단과 의사결정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자아중심적 사고는 카리스마, 추진력, 선명성, 그리고 단호함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원하고 좋아할 것이라고 믿고 설득하는 것은, 다섯 살짜리 아동이 엄마에게 뽀로로 가방이 더 좋다고 설득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동의 자아중심적 사고는 위험하지 않다. 아동에게는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성인의 자아중심적 사고는 폭력이 되기 쉽다. 특히,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거나 그런 위치에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자아중심적 사고는 리더의 결정에 삶이 크게 영향받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폭력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동이 자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자신과는 다른 조망으로 세상을 보는 친구들 덕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다고 말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아동의 시야를 확장시켜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권력이 자아중심적 사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과는 다른 생각이 존재해야 한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권력이 자아중심적 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존재는 나에게 자신감을 주지만, 나를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존재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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