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나 국가경제 경쟁력의 핵심은 인재다. 세계는 지금 인재로 경쟁한다"며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 교수가 말했다. 지식재산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은 삼성-애플의 특허분쟁 등을 경험하면서, 우리 국민의 지식재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졌지만,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불과 한세대 전인 30여 년 전에는 지식재산 전문 교육기관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1980년대 중반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주요 뉴스를 장식하던 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지식재산권 보호는 주요 의제로 포함되었다. 주요 교역 상대국들은 지식재산권을 수단으로 우리나라로부터의 수입을 규제하거나 개방을 압박했다. 세계는 지식재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나, 우리나라는 국가나 기업이나 지식재산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특허청 인력의 전문성조차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가운데, 지식재산권의 국제화와 개방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지식재산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대안이 절실했다. 그 대안은 다름 아닌 전문교육기관의 설립이었다. 교육기관을 통한 경쟁력 있는 지식재산 인력 양성을 목표로 세웠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당시 특허청장이 대통령을 독대해 지식재산연수원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관계부처를 설득했다. 어렵게 1987년 여의도 중소기업회관 8층에 지식재산연수원이 설립됐다. 당시 세계지식재산기구(WIPO)도 아시아의 대표적인 지식재산연수원으로 인정했고 일본 특허청도 부러워했던 우리들의 쾌거였다. 이후 1991년 지금의 대전 대덕연구단지로 자리를 옮기고 전문교육기관으로 인프라를 갖춰나갔다.

설립초기엔, 국제지식재산연수원의 교육은 단순했다. 심사?심판관의 기본교육과 함께, 기업 임직원, 학교의 교장·교감을 대상으로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알리기도 분주했다. 하지만, 설립 20년 즈음인 2005년 발명교육센터를 개관해 학생들의 발명 대중화에 앞장섰고, 2006년엔 WIPO 제1호 공식연수기관으로 지정될 정도로 세계적인 지재권 교육기관으로까지 성장했다.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국제지식재산연수원의 지식재산교육을 수료한 사람은 외국인 3000여 명을 포함하여 50여만 명에 이르고, 온라인 콘텐츠 누적 수강생도 380여만 명에 달한다. 또한 우리나라 심사관이 아랍에미리트의 심사업무를 대행할 정도로 연수원은 심사 전문성 향상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정도면, 우리나라가 글로벌 지재권 제도를 선도하는 5대 강국으로 성장하는데 국제지식재산연수원이 초석이 되었다고 자부할 만하지 않을까?

올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식재산교육기관으로서 지난 30년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내적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보다 유연하면서 보다 강한 지식재산`의 창출과 보호라는 시대변화에 맞춰 교육과정과 콘텐츠를 강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국제지식재산연수원이 제4차 산업혁명시대 우리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영대 특허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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