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구조적 문제 나몰라라 불신·불만 키우는 미봉책 남발 근본적 정책·제도 개선 급선무

다양한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는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폐해가 항상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현상이 개선되지 않고 계속 반복이 되는 것은 왜 그런가. 정치, 경제, 교육, 사회문화 분야에 문제점에 대해 많은 보도가 있고 또 누구나 다 한마디씩 한다. 하지만 이런 제기된 문제점을 몰라서 개선이 안 되는 것인가. 일이 원만하게 가지 않고 해결해야 하거나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될 때는 어떤 정책이나 제도가 충분한 준비가 없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또는 예기치 못한 결과에 대한 예측이나 대비 방책의 부재 등으로 종종 발생하게 된다. 특히 법과 제도의 인위적 당위성에 몰두하다 보면 그 본질은 퇴색되고 정책입안자나 행정가의 단순 성과위주의 일처리로 인해 그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까지 오랜 기간 자정의 능력이 없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몇 주간 지하철 내 작업 중 스러져간 청년 사건, 일상적인 산행이나 모임 중에 영문도 모르게 죽음이나 불행을 당하는 사건 등과 같은 경악스러운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는 우발적으로 닥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건이 날 때마다 기업의 갑질이나 착취, 사회안전망의 부재 등을 얘기를 하지만 이런 현상은 예전부터 지적되어 온 것이다. 즉 이런 예기치 못한 개인과 집단에게 닥치는 불행을 예방하는 대책이나 경고가 항상 있었지만 아무리 문제를 삼고 개선을 요구해도 예산 문제나 긴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던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책임을 지어야 할 기관이나 담당자는 오히려 일정한 거리를 두며 남의 일보듯이 행동하는 아주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전남 신안군에서 일어난 교사 성폭행 사건은 믿을 수 없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만행이었다. 근본적으로 외딴 도서지역에 안전장치 없이 여교사를 발령내는 교육청의 구조적 문제가 지적됐지만 교육 당국은 가만히 있고 사건이 일어난 지역의 주민이 오히려 사과를 했다. 심지어는 피해자의 신상이 노출되고 고통받는 기괴한 일이 비일 비재하다. 이런 비합리적인 모순된 사회에서는 불평등이나 성, 계급, 빈부의 차이를 해소하는 정책이나 노력은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어떤 선제적인 정책이나 논의보다도 사후 약방문식의 미봉책이나 불특정 다수나 개인에게 책임지우기 현상이 만연한다. 결국 못 믿을 사회는 못 믿을 사람만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결과 불신과 불안이 더 심화된다. 이런 개인성과 집단성의 불협화음은 잘못된 제도나 행정을 개선하는 것이 체제 자체의 경직성과 인적 장막에 막혀 불가능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결과 정책이나 개혁을 통해 무엇을 바꾸려 해도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거나 계속 같은 오류를 되풀이 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끔찍한 일들은 서로를 배려하는 인간다운 교류보다는 자신만의 생활과 사적인 이익에만 빠져 지극히 파편화된 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사회 지도층이나 가진 자들이 책임을 서로 전가하고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력보다는 일상에서 수동적인 회피로 일관하기 마련이다. 동료와의 협력보다는 경쟁을 부추기는 학교와 직장생활을 하고 자신의 가치에 못 미치는 대접을 받는 개인은 그 삶이나 정체성이 더 피폐되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제 산업화와 기계화를 거쳐 작금의 기술과 정보의 시대에 개인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필요나 욕망에 의해 조종되는 개체에 불과한 존재로 변해는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된다.

사회의 불합리에 대한 개선은 체제나 제도의 개혁, 기존의 인적구조의 개혁, 그리고 개인의 인식과 행동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만이 스스로의 안전과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정작 신뢰 할 만한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의 시행이나 노력 그리고 인적쇄신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나부터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좀 억울해도 나만이라도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가장 빠른 변화를 가져 올 것이라는 희망을 계속 가져야 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성기완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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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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