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박찬종 특구본부 대덕기술사업화 센터장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일기를 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독후감을 쓰는 것이라고 하시며 이런 말씀을 덧붙였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 당시 어린 마음에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책을 읽고 나면 독서 감상문을 쓰는 또 다른 숙제가 하나 생겼구나 하고 단순하게 받아들인 기억이 난다.

또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씀은 제대로 새기지 않으면서 숙제를 하기 위해 책 냄새가 가득한 도서관에서 몇 권 되지도 않는 위인전을 친구들과 돌려 읽어가며 좋은 말만 골라내 독서 감상문을 쓰는 식으로 숙제를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좋은 독서 습관을 기르기도 전에 어느덧 고등학생이 됐고 고등학교 시절도 교과서와 참고서에 묻혀 살다 보니 제대로 된 독서는 꿈도 꾸지 못했다.

겨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기나긴 휴교 기간을 보내기 위해 여유를 갖고 책을 찾게 됐다. 그제서야 정말로 독서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가 나에게는 독서의 참맛을 알게 해 준 좋은 계기가 되었고 마음으로 와 닿는 정말로 좋은 책을 여러 권 읽고 나서야 협소했던 사고의 틀도 느껴졌고 내 생각 중 왜곡된 시각도 있음을 깨닫게 됐다.

스티븐 레빈(미국 국립도서재단 이사)은 `지식을 경영하는 전략적 책 읽기`라는 저서에서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자기 생각의 회로 안에만 머물게 된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의 책을 읽고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얻는지 또 스스로의 정신적 궁핍에서 벗어나게 되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책은 진정 사람이 만든 것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디퍼런트`라는 책을 읽으며 치열한 경쟁구도를 넘어 진정한 `차별화`를 추구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새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기업들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거나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면서 차별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고 착각한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된 저자 문영미 교수는 비즈니스 세계에 만연되어 있는 유사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차별화 과정이라고 말한다.

단적인 예로 좁은 한국을 무대로 치열하게 경쟁했던 무선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들이 애플의 아이폰 등장에 거대한 댐이 무너지듯 기존 시장의 질서가 재편되어 버리는 상황이 일어났다. 또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통신 요금 정책에 함몰되어 조삼모사식의 보조금 정책으로 소비자를 우롱하는 관행을 일삼는 것이 결국에는 타사와의 차별화에 힘쓰는 노력이 아니라 유사한 정책으로 공멸의 길로 가고야 만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내가 느낀 것은 세계적인 경쟁의 시대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다른 기업과 유사한 방식으로 경쟁에 가세하기보다는 본질적인 차별화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시도가 기업의 혁신을 이끈다는 것이다.

즉 사고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서 `차별화`만을 역설하는 것은 다른 기업을 벤치마킹한다는 의미를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40-50대 기성세대는 요즈음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고 그들의 습성과 태도를 비판적 시각보다는 진정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요즈음 서울의 지하철을 타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바라보는 것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심지어 전자책 단말기들이다. 종이책을 꺼내 들고 독서하는 나 자신이 조금은 뒤떨어진 사람처럼 생각되어 이내 책을 덮어버리고 스마트폰을 들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그 분위기에 동참하곤 한다. 이런 일련의 시장 변화에 둔감한 기성세대들은 아직도 종이책에 오랜 친구 같은 친밀감을 느낀다. 하지만 대세가 기우는데 어찌하랴. 전자 출판이 훨씬 파급력과 보급력이 커져가고 있는데 아직도 종이책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외쳐봐도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 나도 이제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으로 전자책을 더 선호하게 될 것 같아서 오늘 당장이라도 다초점 안경을 새로 장만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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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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