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종 충남대 사학과 교수

중국 환구시보의 인터넷 사이트인 환구망은 2011년 12월 6일부터 2012년 1월 11일까지 네티즌 20만 명을 대상으로 한국을 포함한 주변 11개국의 첫인상을 표현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조사했다. 한국 관련 질문에 답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많은 1만 7702명은 첫인상으로 `역사 표절`을 뽑았다. 환구망은 동북아 각국의 문화적 동질성은 매우 높지만 발원지는 중국이란 점이 명확한데도 한국이 단오제와 공자를 자국의 문화유산으로 신청한 것이 네티즌들의 이 같은 인식을 불러왔다고 해석했다.

한국이 역사 조작 국가라는 중국인들의 인식에 대해 한국인들은 적반하장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우익 역사학자들과,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려는 중국 동북공정의 희생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도는 삼국시대 이래 우리 땅이요 고구려와 발해는 엄연한 민족사의 계통이라고 배워온 한국인들은 일본과 중국이야말로 역사 표절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역사 표절을 하지 않는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순수하고 객관적인 역사라는 것은 없다. 역사는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을 남아 있는 약간의 흔적만 가지고 재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에는 불가피하게 현재의 주관과 편견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하기에 역사는 본질적으로 왜곡, 조작, 표절의 위험성에 강하게 노출되어 있다. 일본과 중국이 역사를 조작한다면 우리도 그들만큼 역사를 조작하는 것은 아닐까? 중국과 일본의 역사 조작에 대해 감정적으로 발끈하기 전에 우리의 역사 조작 가능성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가들은 역사 조작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재야사학자들과 일반인들은 위대한 민족사를 선호하기 때문에 역사를 미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군대에서는 동이족이 중국을 지배했으며, 공자는 동이족이 지배했던 산둥반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동이족이고, 따라서 공자는 한민족이고 우리의 조상이라는 식으로 교육한다. 군대에서는 국수주의적인 재야학자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환상적인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한족은 동쪽에 있는 사람들을 다 동이족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산둥반도의 동이족과 한반도의 동이족이 같은 종족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국수주의자들의 짓이기는 하지만 공자를 한민족의 역사에 포함시키는 것은 역사 조작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통 역사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독도 문제는 어떠한가? `독도`에 대해 최초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1454년의 `세종실록 지리지`에 대한 해석은 간단하지 않다. "우산과 무릉 두 섬이 현의 정동(방향) 바다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고 청명한 날씨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에서는 우산국이라 불렀다." 울릉도와 독도는 약 100km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릉도에서 독도를 육안으로 보는 것은 비록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하나 대단히 어렵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두 섬의 거리가 멀지 않다고 나와 있는데, 100km의 거리가 신라시대 사람들에게 가까운 거리였을까? 세종실록 지리지에 언급된 무릉이 과연 독도를 지칭하는 것일까? 혹시 울릉도에 가까이 있는 죽도를 지칭하는 것은 아닐까? 역사가들은 당연히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고 고민해 보아야 한다. 독도가 한국 땅이라면 과연 언제부터 한국 땅이었을까? 독도 문제를 전공하는 정통 역사학자들도 독도는 삼국시대부터 한국 땅이라고 단정하는데 그러한 인식 속에는 `역사 조작`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노래 부르기에 앞서 독도는 어떠한 근거로 우리 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마다 신학기가 되면 일본의 우익 역사교과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주변국의 역사교과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의 역사교과서는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운지 돌아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일본의 우익 역사교과서 집필자들이 한국의 역사교과서를 부러워했다니 더욱 그러하다. 역사 조작에 대해 역사 조작으로 대응하는 것은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인내심을 가지고 `사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애국적 위조의 유혹을 뿌리치고, 불편한 진실이라도 그것이 사실이면 당당히 인정하는 이성적인 자세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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