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1945~)

난초 화분의 휘어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물이 흐른다.

우리가 난초 화분 하나를 가까이 두고 기꺼워하는 것은 난초의 기품과 그 여유를 누리기 위한 일. 우리가 상대에게 난초 화분을 선물하는 마음은 난초의 기품과 여유를 누리며 살라는 뜻일 것. 갑자기 난초의 서늘한 그늘이 이마에 와 닿는다. 그윽한 난초 향이 무시로 번져 온다.

언젠가 난초의 휘어진 이파리 위에 마음을 올려놓아본 적 있다. 천천히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가녀린 이파리 위에 올려놓으니 난초의 이파리가 휘청하고 더 휘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의 움직임도 받아 안고서 떨려오는 저 속 깊은 생의 밀물이여.

시인은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도 들어야 한다고 했던가. 나태주 시인은 난초 이파리와 허공 사이의 보이지 않는 교감을 눈치 채고 그 울림을 은밀하게 엿듣고 있구나. 이제 시인의 섬세한 감성으로 난초 이파리와 허공 사이에서는 무수한 기쁨을 피워 올린다.

알고 보니 난초가 허공에 기대는 믿음이 저 아름다운 곡선을 만드는 것이다. 난초의 휘어진 곡선을 따라서 번지는 파동이여. 지구의 둥근 원이 여기에 닿고, 우주의 팽창하는 힘도 여기에 와 이어진다.

난초 이파리 사이마다 둥 둥 둥 북소리로 울리며 번지는 침묵. 이 시에 가득한 여백의 미학은 난초 이파리들 사이로 허공이 감싸 안는 무한공간일 것. 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이 순간의 진정한 세계여. 진정한 기쁨이란 이런 것일까!

시인·한남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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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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